별이 빛나는 밤에 사이프러스
글 Windy Lee 에디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들으며 떠올린 인물이 누구나 한 명쯤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떠올린 이는 작품 활동을 한 8년 동안, 실질적으로 평생, 900여점의 그림과 1,700점의 스케치를 그렸으나 가난과 좌절로 일생을 보내다 정신병원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팔린 그림은 스케치 단 한 점뿐이었다. 살아 있을 땐 인정받지 못했지만, 죽은 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 바로 불명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다. 그의 굴곡 많은 생이 영혼에 기대어 담긴 작품들은 영원한 생명력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그의 수많은 걸작 중에 특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 속 사이프러스가 초점이 된 반 고흐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반 고흐와 사이프러스와 대한 단상을 적어보았다.
어릴 적 눈이 빠질 만큼 들여다보던 만화경 속에서 어지럽지만 묘하게 아름다운 위안을 얻었던 기억이 있다. 비슷한 경험과 다시 마주한 것은 어른이 되어 밤하늘의 별빛으로 소용돌이치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 앞에서였다. 그리고 수년 뒤, 프랑스 남부 생 레미의 생폴모졸 요양원 주변에서 찬란한 여름 태양 빛에 대항하듯 이글거리며 하늘로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며 그 기이한 위안의 완벽한 실체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생 레미의 생폴모졸 요양원은 반 고흐에게 고갱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머물렀던 아를 이후에 제2의 안식처가 되어준 곳이다. 그곳에는 반 고흐의 작품들로 그 매력이 궁금해진, 그리고 기이한 위안의 중심이 된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바람에 따라 넘실거리는 밀밭과 꽃밭 풍경 사이로 하늘 높이 우뚝 솟아있었다. 죽기 1년 전쯤 반 고흐를 유일하게 이해해 주고 후원해 준 동생 태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본인은 사이프러스의 매력에 푹 빠졌으며 사이프러스는 마치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다운 선과 균형을 가졌다고 적고 있다. 이후 반 고흐 작품에는 사이프러스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The Starry Night(1889)’, ‘Wheat Field with Cypresses(1889)’, ‘Cypresses with Two Women(1890)’ 등 그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의 그림 속 사이프러스는 땅에 굳건히 발을 딛고 서서 불꽃처럼 이글거리면서도 하늘로 곧게 뻗어 나가려는 짙푸른 상록수로, 어떤 면에서는 태양의 힘찬 생명력을 닮았다. 그런 측면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무모하고 파괴적인 열정의 페르소나가 담긴 오브제가 ‘해바라기’였다면, 변화무쌍한 자태와 빛깔로 강인한 생명력을 뽐내는 ‘사이프러스’는 그의 고독한 페르소나를 닮음과 동시에 위로를 선사하는 오브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이프러스는 사실 죽음과 슬픔의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 속 태양신 아폴론은 키파리소스라는 소년을 매우 사랑했다. 어느 날 소년은 가장 친한 친구인 수사슴을 실수로 죽이고, 슬픔을 견디지 못해 따라 죽으려 했으나 아폴론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년은 자신을 영원히 애통해하는 존재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고, 아폴론은 그를 짙푸른 사이프러스로 만들어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옛날부터 사이프러스를 무덤 곁에 많이 심어 죽음과 불멸을 기원했다고 한다. 어쩌면 반 고흐에게도 사이프러스는 사실 생명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영원한 애통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그의 그림 속에 담긴 사이프러스의 영원한 애통으로 우리도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 최고의 반 고흐 전시로 꼽히는 세 개의 전시가 모두 같은 시기에 개막했다. 암스테르담, 시카고, 뉴욕에서 열리는 반 고흐 전시회는 파리 외곽과 프로방스에서 완성된, 빈센트 반 고흐가 뜨거운 예술혼으로 왕성히 작품 활동을 했던 말년의 작품들을 선보이며 그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각각의 전시에는 총 100점 이상의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전시되지만, 각각의 전시회가 조명하는 측면은 모두 다르다. 이중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5월 22일부터 8월 27일까지 열리는 반 고흐 전시회는 그가 가장 사랑했던 소재 중 하나인 사이프러스를 그린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메트로폴리탄의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 전시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불멸의 명작의 소재가 된,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나무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 예술가의 치열한 독창적 표현력을 상징하는 소재를 전례 없는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1888년 아를 시기의 반 고흐 작품 몇 점에 배경으로 사이프러스가 등장하지만,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된 것은 생 레미 드 프로방스 외곽의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면서부터다. 런던 국립 미술관에 소장된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Wheat Field with Cypresses(1889년 6월)’과 13년 동안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지켜온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1889년 6월)’이 1901년 이래로 처음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재회하면서 이번 전시의 중심을 차지한다. 이 두 걸작이 모두 그의 생 레미 시절에 며칠 만에 각각 완성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이 상징적인 작품들은 반 고흐가 프랑스 남부 생 레미에서 2년에 걸쳐 제작한 40여 점의 작품 중 하나이다. 아를에서 “크고 어두운” 나무를 처음 본 순간부터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내가 보는 대로” 나무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순간까지, 프랑스 남부에서 2년 동안 그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매료시킨 사이프러스의 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가 집중 조명된다. 이번 전시회는 주요 작품들과 함께 귀중한 드로잉과 그의 작품 세계와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삽화 편지들도 함께 전시되어, 작품들의 탄생 배경을 통해 새롭게 그의 걸작들을 감상하며, 삶에 대한 그의 특별한 에너지와 위로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를 둘러본 후 메트로폴리탄 루프탑에도 들려보자. 매년 4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만 개방되는 루프탑에서는 미국 예술가 로렌 할시의 특별 설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설치물은 고대 이집트 상징주의, 1960년대 유토피아 건축, 공공장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반영된 현대적인 시각적 거대한 설치물로 표현되어 있다. 루프탑에는 설치 작품을 배경으로 센트럴파크의 녹음과 5번가의 전망을 바라보며 칵테일과 스낵을 즐길 수 있는 칵테일 바도 마련되어 있다.
Van Gogh’s Cypresses
May 22nd – August 27th, 2023
The Met Fifth Avenue, 1000 Fifth Avenue New York, NY 10028 | metmuseum.org
Courtesy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 Van Gogh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