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틴에이저가 되고 나서 아내는 가족 통합 스케줄을 구글 캘린더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 가족 스케줄을 아내에게 물어보면, 매번 같은 대답이 날카롭게 날아온다. “구글 캘린더 보세요!” 온라인 스케줄링이 아직 불편한 것을 보면 나는 아날로그 구세대이다. 나는 탁상용 캘린더 위에 모든 스케줄을 펜으로 기록한다. 2020년 달력을 한번 들여다보았다. 매 페이지마다 일정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1월 19~21일 (college visit), 2월 15일(WY come to 우리 집), 3월 12일 (Pandemic 선언 by WHO), 4월 7일 (오마니 구순), 5월 12일 (치과), 6월 20일 (Tim wedding), 7월 27일 (장인어른 병원), 8월 29일 (자동차 pick up), 9월 11일 (zoom parents 오리엔테이션 for LU) 10월 10일 (M&I 원고), 11월 5일 (DMV with Rachel), 12월 31일 (송구영신 zoom)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쓰나미처럼 다른 모든 기록을 휩쓸어 버린 한 해였다. 아는 분들 중에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세상을 뜨신 분들도 계신다. 직업을 잃고 언제까지 실업수당이 나올까 전전긍긍하는 분들도 주변에 있다. 직장을 잃지 않은 분들 마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출근한다. 지난가을 대학생이 되어 온라인 수업을 듣는 큰아이는 캠퍼스 구경 한번 하지 못하고 졸업하는 것은 아닌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누구나 나누는 덕담,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은 평생 처음이다. 2021년 새해가 과연 우리의 바람대로 복이 넘치는 Happy New Year 가 될 수 있을까?
몇 년 전 Management Science 라는 학술 잡지에 “The Fresh Start Effect: Temporal Landmarks Motivate Aspirational Behavior”라는 글이 실렸다. 내 식으로 번역하자면 “심기일전 효과: 어떤 특정한 시간으로 인해 큰 꿈을 품는 자가 된다”라는 소논문이다. 글의 요점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특별한 시점을 계기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는 열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새해 첫날 새해결심이나 (New Year’s resolution) 이루고픈 목표를 세우는 식이다. 이런 현상은 꼭 정월 초하루 뿐 아니라, 매달 초하루, 매주 월요일, 새 학기 초, 혹은 개인적으로 자기 생일이나 휴가 때에도 발생한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다이어트, 헬스 센터 방문, 목표 이루기” 같은 단어가 이런 특정 시간에 구글 검색에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의 실패나 어려움 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이런 계기를 통해 새롭게 다시 시작해 보려는 현상이다. 아직도 코로나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2021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는 이런 연구 결과처럼 어려웠던 기억을 뒤로하고 새로운 꿈을 품고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일까?
“비긴 어게인”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의 유명 뮤지션들이 해외에 나가 길거리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비긴어게인 시즌 1을 소개하는 글을 한번 보자.
한국의 국민가수 ‘이소라’, ‘유희열’, ‘윤도현’이 그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해외를 여행하며 버스킹에 도전한다! 관객은 길 가던 사람들, 무대는 길바닥! 과연,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무대는 어떨지? 허무맹랑한 도전 같아 보이지만, 이를 통해 잊고 살았던 초심을 돌아보고, 가슴 깊은 곳 숨어있던 열정을 깨우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 냉랭하면 냉랭한 대로, 열광하면 열광하는 대로! 억지로 세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객들의 반응을 담는다! 자유롭지만 진지하게, 오로지 음악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특별한 여행이 시작된다. 과연 나의 노래는 외국에서도 통할까?
한국에서는 유명 가수지만 알아주는 팬이 전혀 없는 해외에서의 길거리 버스킹은 상당히 무모해 보인다. 그래도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수혜자는 뮤지션들 자신이 아닐까 싶다. 이들에 대한 선입견이나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외국인들 앞에서 공연하며 아마도 자신의 힘겨웠던 무명시절이 다시 떠올랐을 것이다. 위 소개 글처럼 초심을 돌아보고 숨어있던 열정을 다시 깨우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만큼 귀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2000년 전 고대 근동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
시골 어촌 동네 목수가 제자들을 모으고 대중 활동을 하면서 전국적 인지도가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3년이 지난 후 스승이 수도 예루살렘으로 가자고 할 때 제자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짐짓 이들 마음속에는 스승이 생각하는 일보다는, 3년을 따라다닌 보상을 드디어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욱 컸다. 스승은 이들에게 자신의 삶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가르쳤다. (마가복음 10:45) 하지만 제자들은 그런 스승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한 제자는 실망하여 스승을 배신했고, 나머지도 스승이 십자가의 길을 갈 때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다. 무기력해 보이는 스승의 죽음으로 그들의 꿈은 허망하게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스승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약속을 하나 했었다. “3일 후에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
갈릴리는 3년 전 스승을 처음 만났던 그들이 살아 온 시골 마을이었다. 스승의 놀라운 예언대로 죽음에서 부활하여 그들을 다시 만났다. 실패한 제자들을 왜 처음 만났던 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던 것일까? 그것은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리셋하고 비긴 어게인 하자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부활하신 스승을 갈릴리에서 만난 제자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제자들은 낮은 곳에서 세상을 섬기다가 하나씩 하나씩 모두 스승의 곁으로 갔다. 그들의 새로운 섬김은 이 세상 역사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되었다.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부터 이어지는 해결되지 않은 많은 걱정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2020년 초에 가졌던 꿈과 계획은 온데간데없다. 과연 Happy New Year 가 될 수 있을까? 나도 스승을 다시 만나려 한다. 그를 처음 만났던 곳으로 가려고 한다. 그를 만나는 자마다 Begin Again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새해의 반짝 Happy New Year를 넘어 영원한 Happy New Life를 누리게 되길 바래본다.

글 주진규 목사
•맨하탄 GCC (Gospel Centered Church,복음으로 하나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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