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번의 오디션과 춤, 노래, 연기로 무장한 배우 황주민의 Now or Never Story

인터뷰/글 황은미 변호사

2018년, 뮤지컬 <더 프롬 The Prom>의 앙상블에 유일한 한국인 배우로 참여하며 뉴욕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배우 황주민. 영어도 제대로 못 했던 29살의 그가 위스콘신 주립대에 편입 후 5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그렇기에 그의 브로드웨이 도전기는 그에게 따라붙던 ‘한국 토종’, ‘영. 알. 못.’과 같은 수식어가 무색하게 언어 장벽을 뛰어넘은 놀라운 성공으로 더욱 주목받았다. 하지만, 브로드웨이도 비껴갈 수 없었던 팬데믹의 가혹한 풍파를 막 신고식을 치른 황주민 역시 피할 수 없었다. “힘들었어요.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단 한 순간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배우가 무대 위에 서는 것은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집합적 경험이 관객에게 전달되어 관객들이 사는 세상이 달라질 수 있는 멋진 일이라 말하는 배우 황주민. 이제 그는 브로드웨이를 넘어 할리우드를 꿈꾼다. 누군가는 불가능한 꿈이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0년 전, 영어도 제대로 못 했던 그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겠다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꿈”을 품고, 믿고, 끝끝내 이루어 냈던 것처럼 말이다. 브로드웨이를 넘어 할리우드에서 더욱 자유롭고 당당하게 연기하는 황주민의 도전이 벌써 기대가 된다. 그가 이루어 낼 또 한 번의 멋진 비상을 함께 응원하자. 

“IT’S MY LIFE. IT’S NOW OR NEVER.
I JUST WANT TO LIVE WHILE I’M ALIVE. IT’S MY LIFE.”
– 뮤지컬 <앤줄리엣 & Juliet> “it’s My Life” 가사 중 발췌 –

2021년 2월 맘앤아이 스튜디오 개관식에 참석하여 즐거운 시간을 함께 나누었던 황주민 배우를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2년 반 만에 다시 뵙는데요,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배우 황주민입니다. 2022년 11월부터 뉴욕 브로드웨이 스티븐 손드하임 극장(Stephen Sondheim Theatre)에서 공연 중인 <앤줄리엣 & Juliet>에서 캠프(Kempe)와 프랑수아(Francois)의 언더스터디를 담당하며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새로 시작한 공연 중 티켓 예매율이 가장 높은 공연인 <앤줄리엣 & Juliet>에 참여한 한인 배우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매일매일 행복하게 공연하고 있습니다. 많이들 보러 오세요.

2023년 제76회 토니 어워즈에서 베스트 뮤지컬상을 비롯한 총9개 부문의 후보에 오른 <앤줄리엣 & Juliet>은 올해 최고의 화제작으로 손꼽히고 있는데요. 어떤 뮤지컬인가요? 
<앤줄리엣>은 작곡가 맥스 마틴(Max Martin)의 역대 히트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로, 2019년 맨체스터에서 첫선을 보인 후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작품이에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서른 개의 곡들과 드라마가 잘 짜여 있는 작품입니다. 줄거리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인데요. 로미오가 죽은 후 줄리엣이 독약을 먹지 않고, 즉 로미오를 따라 자살하지 않는다는 가상의 시나리오에서 시작합니다. 줄리엣과 그녀의 친구들이 함께 파리로 떠나는 여정에서 겪는 모험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할 수 있어요. 이 공연은 캐나다 토론토의 프린세스 오브 웨일즈 극장에서 먼저 공연되었고, 2022년 11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정식으로 개막했습니다. 개인적인 <앤줄리엣>의 감상 포인트를 말씀드리자면, 감동적인 서사가 있어요. 일상에 지친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많은 분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들이 또 다른 매력이에요. 맥스 마틴이 작곡하고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셀린 디옹(Celine Dion),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핑크(Pink) 등이 부른 곡들이 드라마와 엮어지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주크박스 뮤지컬입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당당히 서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8년간 대략 1000번의 오디션을 본 것 같아요. 2013년 위스콘신 주립대에 편입한 뒤, 졸업 후 뉴욕으로 이주한 처음 6개월 동안 300개가 넘는 오디션을 봤어요. 동양인 혹은 동양을 주제로 한 작품이 아니면 주목조차 받을 수 없었던(지금과는 아주 다릅니다만, 웃음) 시간이었습니다. 오디션을 보러 가면, 제작진이나 다른 배우들로부터 ‘재는 왜 오디션을 보러 왔지’하는 식의 눈치를 받았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죠. 오프 브로드웨이 오디션부터, 단역, 신문 광고, 상업 영화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오디션에 계속 지원했어요. 

배우 조합에 가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디션을 보러 다닐 때는 무조건 기다리는 것이 일이었어요. 배우 조합에 가입된 배우들이 오디션을 다 보고 나서 시간이 남으면 비 조합 배우들에게 오디션 기회가 오기 때문에 무조건 일찍 가서 기다려야 했죠. 힘들었지만 또 재미있었어요. 영어 공부할 때 참고했던 영화 속에 마치 제가 들어와 있는 것처럼 비현실적이었죠. 제가 배우 조합에 가입하게 된 건 뉴욕 온 지 2년쯤 되었을 때 참여한 <케이팝 KPOP>이라는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을 끝낸 후였어요. 조합에 가입하면서 많은 브로드웨이 작품의 오디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무조건 기다리는 “고생”은 없었어요. 지금은 오디션장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미리 받아보고 선택할 수 있어요(웃음).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서 보니, 저의 지난 과정이 길거리에서 막연히 오디션 기회를 기다렸던 때부터 골라서 오디션을 갈 수 있는 오늘로, 많이 달라졌네요(웃음). 

<앤줄리엣> 오디션은 어땠나요? 오디션 보고 나오면서, ‘됐다’ 이런 느낌을 받았나요?
네(웃음)! 오디션 보고 나오면서 “아, 됐구나”하고 알 수 있었습니다(웃음). 저는 비보이로 활동하며 춤을 익혔고, 공연을 통해 만난 고창석 배우로부터 연기를 배웠고, 명지대와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앤줄리엣> 오디션 때 이 세 가지 모두를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었어요. 특히 <앤줄리엣> 춤 오디션 때는 심사진이 브레이크 댄스를 요청해서 제게는 유리했어요. 이 세 가지를 익히고 있던 20대에는 제가 집중과 선택을 못 하는 건가, 불안해했어요. 비보이를 하다가 연기를 할 때는 비보이의 경력이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했었고, 노래할 때는 연기했던 시간이 허송세월한 것인가 고민됐었죠. 그런데, 그 모든 시간을 열심히 보내고 나니, 지금은 춤, 노래, 연기 삼박자를 고루 갖춘 배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앤줄리엣> 오디션에서 춤, 노래, 연기를 모두 시켰을 때, ‘됐다’ 바로 알 수 있었죠(웃음).  

K-Pop을 위시한 K-Culture에 대한 국제적 인지와 호감도가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패션, 여행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도 K-Culture에 대한 선호나 인지도가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제가 처음 브로드웨이 무대에 섰을 때와 지금은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때는 한국 배우들이 거의 전무했고, 한국, 한국 배우에 대한 인지도도 낮았어요. 지금은 배우뿐 아니라 공연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K-Pop을 시작으로 K-Culture에 대한 높은 호감과 인지도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요즘입니다. 다양한 배경의 배우들이 동등하게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고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되려 제가 ‘한국’이라는 배경에 큰 도움을 받는 것 같아요. 감사한 일입니다. 

앤줄리엣에서 처음으로 프랑수아(Francois) 역할을 했을 때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처음으로 프랑수아 역을 연기했던 날, 객석에 큰절을 올리면서 울고 말았어요. 커튼콜을 할 때 동료 배우가, “10년 전에는 영어도 잘 못하던 주민이 오늘 주인공을 연기해 냈다”라고 하며 저를 객석에 소개했어요. 그리고, 그 순간 저의 아버지역으로 나오는 파울로 소트(Paulo Szot) 배우가 저의 등을 토닥토닥 만져주는데 눈물을 참을 재간이 없었어요. 특히, 파울로 소트는 브라질에서 이민 온, 어찌 보면 저와 같은 이민 1세대 배우입니다. 그래서, 그가 토닥거리는 손짓이 남다르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파울로 소트 배우가 저를 이해해 주고 응원해 주었던 것처럼 저도 언젠가 다른 배우들에게 든든한 멘토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었어요.   

 

뉴욕은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황주민은 “영원한 꿈과 영감의 도시”라 답했다. 

말없이 등을 토닥토닥해 준 동료 배우의 몸짓에 눈물이 쏟아질 만큼 힘들었지만, 1000번의 오디션을 치르며 끝끝내 브로드웨이 무대 위에 서는, 꿈을 이룬 배우 황주민. 꿈을 이루었지만, 할리우드라는 또 다른 도전을 꿈꾸는 배우 황주민. 그가 바라보는 뉴욕이 영원한 꿈과 영감을 주는 도시인 까닭은 그가 꿈꾸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리라.  

공연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았기에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자신의 공연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배우 황주민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 황주민은 “꿈과 영감의 도시” 뉴욕 브로드웨이를 넘어 할리우드에서의 아름다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 브로드웨이 무대를 가득 채웠던 그의 매력적인 미소가 커다란 영화 스크린에 가득 채워질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힘내라! 황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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