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기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읽는다”

도서출판 특별한 서재의 ‘구미호 식당’

맘앤아이 북클럽에 도서로 후원해주시는 도서출판 특별한 서재는 2017년에 설립된 출판사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책”이라는 기치아래 ‘책’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가치관을 제시하는 출판사다. 맘앤아이 북클럽 2기 멤버로 조인하신 John Kim님께서 특별한 서재가 제공한 책 ‘구미호 식당(박현숙 저)’을 읽고 나눠주신 후기를 소개한다.

 

구미호 식당을 읽고

John Kim(북클럽 2기, Chef)

시간은 방학이 가까울수록 점차 느려진다. 그러나 교장선생님 훈시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서서히 가속을 시작하고 개학이 가까워져 올 때 즈음엔 거의 빛의 속도로 흘러간다. 며칠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밀린 일기가 산더미이고 너무나 깨끗하기만 한 순백의 탐구생활은 늘 우리의 초등학교 시절을 힘들게 했다. 소풍 전날 설레어 뒤척이던 기억을 더듬어보자. 빨리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한 두시간이 복귀날짜의 압박에 시달리는 군인 아저씨의 6박 7일보다 길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시간은 그렇게 계량화되어지지 않고 담아 둘 수 없으며 물리적이기도 하지만 보다 심리적이다.
49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정확히 말하자면 짧은 자에게는 짧고 긴자에는 길다. 이 기간에 망자의 사후 운명이 결정된다. 지나온 삶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마지막 날에 염라대왕의 최종판결에 따라 극락과 지옥행이 결정된다. 판결을 기다리는 일종의 대기기간이다. 이 저승대기소에 죽어서도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중년남 이민석과 차라리 죽어서 다행이다고 생각하는 중학생 왕도영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피 한 모금씩을 얻어 영생불사 완전체가 되기를 꿈꾸는 천년 묵은 여우 서호도 있다. 49일을 다시 이승에서 보내게 해주겠다는 말에 둘은 서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추가로 삶을 얻어 이승으로 복귀한 이 두 남자 그리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그들과 얽히고 설킨 사람들이 한 식당을 배경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바로 소설 ‘구미호 식당’이다. 그런데 이거 불법이다. 이승과 저승은 맘먹는다고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희랍신화의 오르페우스도 에우뤼디케를 저승에서 데려오지 못했고, 프쉬케도 페르세포네의 화장품을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 티끌 하나라도 오갈 수 없게 한 조물주의 지엄한 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저녁 점호를 마친 저승대기소는 사라진 이 두 명을 찾느라 난리가 났을 것이다. 작가는 이 탈영병들이 발각될 것이 걱정스러웠는지 기발한 보호 장치 하나를 들고나온다. Face Off! 면상, 아니 안면교체! 다른 사람의 얼굴로 이승에 컴백한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좋은 말들만 오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친밀하고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고 못 하고를 떠나 그게 나의 가감 없는 실제 모습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삶에 녹여 낼 수 있는 성숙함이 있다면 나 자신의 모습을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이야기들을 몰래 커튼 뒤에 숨어 들을 수 있다면!? Face Off를 통해 주인공들은 이 커튼을 본의 아니게 두 손에 받아든다.

민석의 시간은 빠르고 조급하게 흘러간다. 주어진 시간 동안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자신을 배신한 연인 서지영이라는 매듭이다. 반면 도영의 시간은 밋밋하고 무덤덤하게 흘러간다. 그에게 삶이란 아버지의 폭력, 배다른 형과 할머니의 구박 외엔 기억나는 게 그다지 없는지라 얼떨결에 민석이 아저씨 따라서 돌아오긴 했지만, 이승에서 별로 할 게 없다. 그런데 둘에게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민석과 도영은 구미호 식당을 찾아온 생전의 지인들을 하나둘 만나게 된다. 주인공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인들은 민석과 도영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들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이를 통해 민석은 애증의 대상이었던 서지영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것은 스스로에 대한 집착이었음을 깨닫는다. 도영이도 지긋지긋한 할머니의 구박이 부모 없이 커가는 손자를 향한 안쓰러움과 미안함이었고, 배다른 형의 집요한 괴롭힘 뒤엔 동생에 대한 진심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몰라 엇나가기만 했던 안타까움이 숨어 있었다는 걸 알게된다. 그렇게 병적인 집착에서 벗어난 중년과 환멸과 냉소를 내려놓은 소년은 자신들도 소중한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되고 비슷한 빠르기의 시간을 함께 걸어 저승으로 돌아온다.

작품을 읽으며 관심있게 지켜 본 것은 민석과 도영의 시간이 주는 속도감의 변화였다. 말미에 접어들어 갈등이 해소되면서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아가는 민석의 시간과 생에 애착을 갖게 되면서 반대로 서서히 속도를 높여가는 도영의 시간. 그 속도감이 그들의 상황과 감정 변화에 일치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책의 주인공을 뽑아 보라면 도영이의 배다른 형 왕도수를 뽑겠다. 작품 초반부에 하는 짓들을 보면 본명이 왕재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밉상이다. 반건달 중 2병 환자에 늘 입과 배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다니는 개구리 왕자님 같지만 그의 진가는 작품이 후반부로 흘러가면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캐릭터들은 모두 무겁다. 집착 이민석, 냉소 왕도영 그 주변에 배신 서지영, 구박 할머니, 배달 수찬이 등등 한명한명 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스토리와 설정은 재미있는 데 반해 캐릭터들이 다들 수면 아래 깊은 곳에 자리 잡고있는 것이다.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스토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통통튀며 데굴데굴 굴러가게 해준 건 전적으로 왕도수의 설레발과 오버 덕택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역시 도수와 도영의 화해 장면이다. 왕도수의 눈물. 때로는 감성적이고 세심한 사람의 대성통곡보다 어설픈 터프가이의 눈물 한 방울이 더 임팩트가 큰 법이다. 왕도수. 귀엽고 정이 가는 캐릭터다. 구미호 식당. 재미있게 읽었다. 그곳은 자신의 삶을 보다 넓고 깊게 그리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며 누구의 삶이던 그리 나쁘지 않다고 너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격려해 주고 다독여 주는 곳이다. 나에 대해 이야기해 줄 사람이 나밖에 없을 때 삶은 불행해진다. 홀로 잘나서 폼잡고 서 있는 것보다는 못나고 부족하고 때론 지지고 볶더라도 서로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백 번 낫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구미호 식당에 가서 맛있는 크림말랑 한 그릇씩 먹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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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을 맞이한 북동부 최대의 한인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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