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고, 보기 쉬운 예술 안내서

쉽고 재밌는 문화 여행

 

글  앤드류 임 극작가, 연극연출가

‘카타르시스’라는 말을 들어보셨는가. ‘오랜만에 들어본다 카타르시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상당수일 것이다. 그렇다 그 카타르시스다. 중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에 들어봤음직한 그 단어 말이다. 카타르시스가 뭐지? 먹는 건가? 하시는 분들도 걱정마시라. 이 글은 여러분을 위한 안내서다. 말을 꺼냈으니 카타르시스가 무슨 말인지 먼저 대충만 짚어보자. 그야말로 대충이니 이 단어를 어렴풋이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 참 그거였지’ 하시면 되고, 모르겠는 분들은 그냥 그런 것이려니 들으시면 된다. 

필자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들은 카타르시스의 개념은 ‘정화작용’이다. 감정을 정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나 뭔가 좀 어렵고 애매한 느낌을 준다. 정화라… 더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이해를 위해 카타르시스가 갖는 본래의 뜻을 설명하면, 이는 원래 그리스어로 ‘배설’을 뜻하는 말이란다. (심지어 설사약 이름이었다는 말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이 <시학>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꺼낸 단어다. 연극에서 주인공의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비극적 결말을 보며 연민과 공포를 거쳐 감정이 깨끗해지는 상태가 카타르시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명하고 있다.  그가 쓴 이 시학이라는 책은 이천년 이상 서양 연극의 지침서 노릇을 했다. 바로 이 문제의 책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극이 궁극적으로 보는 사람에게 주게되는 것이 카타르시스라고 한 것이다. 

연극과 공연 얘기를 쉽고 재밌게 하겠다 선언해 놓고 카타르시스를 학문적으로 장황하게 설명하면 필자의 다음호 칼럼이 위협받을 수 있으니 여기서 줄이고, 문제만 콕 집어 얘기하겠다. 카타르시스는 감정이입을 전제로 하고, 감정이입은 주로 연극을 현실로 착각하는데서 가능해지는 상태이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이를 위해 관객들이 현실로 착각할 만한 연극을 만드는 데 골몰하게 되었다. 한동안 관객들이 연극을 현실로 착각하게 만드는 노력은 상당히 성공하는 듯 보였다. ‘사실주의 연극’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연극을 현실로 착각하게 만들기’는 전성기를 맞는 듯 했고 말이다. 이 시대에는 심지어 ‘제 4의 벽’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오늘날 우리가 브로드웨이나 대학로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무대 구조를 생각해 보시라. 무대가 액자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구조다. 여기서 객석과 무대 사이에 투명한 벽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 벽을 제 4의 벽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관객들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투명한 벽 또는 열쇠구멍을 통해 엿보듯이 연극을 보게 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그런데 말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연극을 마냥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영화의 등장은 사실주의 연극, 즉 현실로 착각하며 봐야하는 연극에게 치명적인 결정타였다. 연극 무대를 제 아무리 현실감 있게 민든다 한들 현실을 그대로 사진 찍어 보여주는 영화에 어찌 당하겠는가! 심지어 요즘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세계도 현실로 착각하게 만드는 마당에 말이다. 안경 쓰고 앉아서 보면 스크린 속의 것들이 눈 앞까지 막 튀어나오는 이른바3D 영화도 있지 않은가. 

TV는 어떤가. 아주머니들 연속극 보며, 못된 시어머니, 조강지처 버리는 남자 같은 등장인물들에게TV 화면에 대고 욕한다.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눈물도 쏟는다. 감정이입, 카타르시스가 다 이루어지는 셈이다.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나왔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는 막장 드라마라해도 감정이입에는 지장 없다. 

과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론은 한국의 막장 TV드라마에서 완성됐단말인가? 한류열풍을 타고 전세계에서 인기를 끄는 한국드라마들은 과연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결정체인가. 더더욱 궁금한 것은, 그렇다면 연극은 영화 출현 그리고 아리스트텔레스 시학 이론의 결정체인 한국의 막장드라마에 의해 -물론 농담이니 어디가서 이렇게 말하는 분 없으리라 믿으며- 벌써 끝장이 났어야 하는데, 왜 아직도 브로드웨이에는 그리고 대학로에는 수많은 관객들이 몰려들까?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연극에는 연극만이 주는 재미가 여전히 풍성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입이나 카타르시스 말고도 연극이 주는 재미는 차고 넘치며 영화나 TV 드라마가 영원히 따라올 수 없는 재미가 있다. 

보고 싶고 보기 쉬운 예술 안내서를 지향하는 본 칼럼이 하려는 일은 바로 여러분께 바로 이‘연극만이 갖는 재미’를 찾아드리는 일이다. 

칼럼을 끝내기 전에 한가지 흥미있을 법한 일화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오래전 작고하신 전설적인 연극배우 추송웅선생으로부터 전해지는 얘기다.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큰 규모의 고전 작품을 공연할 때 일이란다. 첫 장면에서 무대에 불이 들어오면 추송웅선생은 세트로 지어진 저택 꼭대기의 작은 창문을 열어젖히며 얼굴을 내미는 것으로 첫 등장을 해야했단다. 대사는 없이 말이다. 연습 때 하던 것 처럼 조명이 켜지고 얼굴을 내밀며 첫 등장을 했는데, 순간 눈 앞에 만원관객이 보이더란다. 이 노련한 배우도 수많은 관객이 눈에 보이자 기쁨반 흥분반이 되었고 순간 자기도 모르게 없던 대사를 하고 말았단다. 이른바 애드립이다. 

“캬~ 좋다~” 막이 오르고 무대에 지어진 저택의 꼭대기 조그만 창문에서 그다지 잘생기지 않은 배우가 고개를 내밀더니, 느닷없이 “캬~ 좋다~”를 외치니 관객들의 웃음이 터져나온 것이다. 요즘 표현대로라면 빵 터진 셈이다. 의외의 반응에 추송웅선생은 이 후의 공연에서도 첫 장면에서 같은 애드립을 했고 매번 관객들을 웃게 만들었단다. 그러다가 추송웅선생은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고, 자신이 연극에서 관객들을 웃겼던 애드립, “캬 좋다”를 비슷한 장면에서 시도했다. 결과는 요즘 표현대로 썰렁 그 자체였단다. 관객들이 웃기는 켜녕 저기서 저 말을 왜 하냐며 의아해 하더란다. 과연 같은 애드립이 연극에서는 재밌고 영화에서는 안통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다음호부터 다루게 될 연극이야기는 바로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다. 즉 연극만이 갖는 재미, 연극이어야 있을 수 있는 재미에 대해(감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서의 재미) 탐구하는 일말이다.   

연극배우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
한국의 찰리채플린 배우 추송웅-사진출처 네이버

앤드류 임(Andrew Lim)

극작가, 연극연출가, 평론가, 자유기고가극단 MAT 상임연출

중앙대학교와 동대학원 연극학과뉴욕대학교 대학원 극작 및 연극연출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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