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젓한 국민으로 대우 받으려면 먼저 이 사회에 기여해야 합니다

인터뷰 및 글 이수정 _ Chief Storyteller

뉴욕 맨하탄에 위치한 전세계적인 명품 뮤지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MET). 가히 미국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을 그 유서 깊고 웅장한 뮤지엄에 최초로 한국어 투어 프로그램(Highlight Tour in Korean)을 도입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있다. 46년 간 뉴욕 시 주민으로 살면서, 메트로폴리탄을 찾는 한국인들에게 보다 의미 있고 유익한 관람 경험을 제공하고자 30여 년 한 자리를 지킨 문화지킴이 구 창화 씨를 맘앤아이에서 만나 보았다.

처음에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결혼하고 맨하탄으로 이사 왔을 때 남편이 제게 메트 뮤지엄 멤버쉽을 만들어줬어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여유시간이 생기자 사회의 혜택에 보답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멤버십을 갖 고 있기도 한 메트에 자원봉사를 신청했지요. 신청 후 2 년쯤 지난1990 년에 연락이 왔어요. 금요일 반나절만 봉사하며 조금씩 큰 기관의 일을 배워나갔지요.

메트에서 한국어 투어 프로그램 (Highlight Tour in Korean) 은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1992년, LA 폭동 때 저는 멀리 있었지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인종 간의 문화적 이해와 존중이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생 각을 하게 되었고, 우리 한민족이 이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정 착하려면 문화적 향상이 절실하다고 느꼈지요. 그래서 가능한 채널을 뚫 어보고 여러 사람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1년 간의 투어가이드 교육과정 에 들어갔지요. 당시 메트에서 제공되는 외국어 투어인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이태리, 일본어 다음으로 한국어가 여섯 번째 외국어가 된 것입니 다. 초창기 투어를 할 때는 저 혼자라 보통 책임이 무거운 게 아니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메트에서 한국어를 멋지게 들려주기 위해 목소리나 자 세, 걸음걸이 등에도 정성을 다했습니다. 1993년부터 요청이 있을 때만 투어를 할 수 있었어요. 한국어 투어 가이드 존재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 어서 저 혼자 백방으로 애를 써야 했어요. 그러다 몇 단체들이 투어를 요 청했고 1994년부터 한국어가 정식 프로그램에 올라 매주 금요일에 정규 제공되었어요.

▲ 30여 년 전 메트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우리가, 또 우리 후손이 버젓한 국민으 로 미국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정착하려면 우리가 이 사회에 먼저 기여해야 한다 는 믿음에서였고 그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구창화 (Changwha Koo)

서울에서 태어나 625와 피난을 겪으며 자랐다.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 졸업 후 1972년 미국으로 유학 왔다. 뉴욕한국학교에서10년 간 한글을 가르치면서 한국어 교재의 삽화를 그렸다.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다수의 매체에 메트(MET)에 관한 컬럼을 썼다. 20여년 전부터는 신라, 백제, 고구려를 거쳐 베니스까지 잇는 실 크로드를 비롯, 지중해에 면한 23개국을 모두 밟는 문화 유적지 순례를 하고 있다. 팬 데믹 기간 동안 버몬트 시골 집에서 지내면서 625 재단을 설립한 남편을 도와 한 국전에서 희생된 용사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사업에 일조하고 있다 .

메트의 한국어 투어 가이드는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지는지요?

메트에서 1년간 교육을 받고 심사에 통과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진행됩 니다. 그 시간에 모인 일반 관람객들에게 뮤지엄 곳곳을 안내하며 예술품 의 이해와 감상을 돕습니다. 아시다시피, 5천년 넘는 인류역사와 세계 각 처의 미술 문화 창작품을 소장한 메트의 백과사전식 전시 규모는 엄청나 게 방대합니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불편함이나 긴장감 없이 친근하고 쉽 게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국어로 도와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정규 하이라이트 투어는 한 시간 동안 여러 갤러리를 다니며 약 7,8 점의 작품을 소개하는데, 작품 선정이 가이드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여러 번 방 문해도 다른 내용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27년간 쌓인 작품 수가 많아 제한된 시간에 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할 때 고민이 많아요. 예 를 들어, ‘과연 눈에 보인다고 다 보는 것인가?’라든가 ‘풍경화’같은 테마로 각 문화와 시대를 조명해보기도 합니다. 소장품이 다양하고 광범위한 메 트가 제공하는 기회를 관람객들이 놓치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좀 생소 하다고 여겨질 문화의 작품도 꼭 포함시키고요. 한국에서 대하기 어려운 고대문화나 아프리카, 중∙근동 지역 미술도 추천하고 싶어요.

한국어 투어 가이드의 자원봉사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현재 8명의 한국어 가이드가 일주에 세 번(화, 수, 금) 11시에 정규 투어 를 번갈아 담당하고 있으며, 정규 투어 외에도 단체가 미술관에 요청하면 특별 투어를 합니다. 지금은 이례적인 팬데믹 기간이라 미술관의 모든 프 로그램이 정지되어 한국어 투어 가이드는 제공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어 투어프로그램 또는 다른 부서에서 봉사하고 싶은 분은 미술관 웹사이 트에서 자세한 내용을 찾을 수 있어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미술에 관심이 있고, 봉사하는 즐거움을 알고, 책임감이 강하며, 시간을 낼 수 있 는 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한국어 투어 가이드 자원봉사에 참여하면 어떤 혜택이 있을까요?

고마운 이 사회에 그 혜택을 조금이라도 환원하는데 보람을 느끼고, 인류 문화의 보고라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위대한 창작품을 대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쁨이 크고, 공부하고 배우는 자기향상의 도전이 가능하지요. 또, 아는 것을 나눌 수 있는 기회라 보람도 크고요. 부수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좋은 친구가 되는 것도 큰 혜택이라 할 수 있지요.

▲ 서울대 미대에서 응용 미술학을 전공한 구창화 씨는 20여 년 전부터는 신라, 백제, 고 구려를 거쳐 베니스까지 잇는 실크로드를 비롯, 지중해에 면한 23개국을 밟는 문화 유적지 순례를 하며 고대 미술의 원형을 만나고 있다

메트에서 일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요?

특별 투어를 신청하고 여러 번 방문한 그룹 관람객이 있었는데, 하루는 그 중 한 분이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고 참석하셨어요. 이유를 물어보니 “미국 에 올 때 혹시 필요할까 싶어서 칵테일 드레스를 가져 왔는데 입을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그런데 미술관 이상 좋은 데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오늘 입었어요”라고 하시더군요. 평상복 차림이나 여행 중 간편한 복장으 로 미술품을 감상하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요, 그 분처럼 아름다움을 대하 면서 아름다운 것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자세가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그 분 생각이 자주 납니다.

메트의 한국어 투어 가이드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면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요?

메트의 자원봉사자 단체는 미술관이 기획하여 만든 단체가 아니라 자발 적인 협력단체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모여 오로지 미술관만을 위해 봉사 하지요. 명실공히 스스로의, 스스로에 의한, 그러나 미술관과 시민을 위한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봉사가 목적입니다. 가끔 아직도 메트에 봉사하는데 대한 인식이 빗나간 경우를 대할 때 힘이 빠지 곤 해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초기에는 자원봉사의 인식이 달라 많은 오해를 받았어요. 보수도 없는 일을 왜 하느냐, 왜 한국이 아닌 미국사회를 위해 봉사하느냐, 그 노력이면 학위를 받는데 쓰라는 등 많은 이야기를 들 었습니다. 어려운 이민 생활에서 여유가 없다는 이유를 이해하지만, 우리 후손이 버젓한 국민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으려면 우리가 먼저 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 지, 맘앤아이 독자분들께 나눠 주세요.

예전에는 몸이 허락하는 한 메트에서 투어 가이드 일을 계속하겠다고 장 담했는데, 요즘은 후배에게 기회의 길을 터 주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제가 힘들게 만든 프로그램에 대해 애착이 크지요. 방문자들과 함께 하는 미술감상 산책이 참으로 즐겁고, 새 것을 배웠을 때 나누는 기쁨이 크 기 때문에, 역량이 되는 대로 새로운 기회를 위해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제 딸들이 엄마가 봉사하는 모습에 큰 자부심을 가져 주었는데, 이젠 네 명의 손주들에게 할머니로서 어떤 모습을 남겨줄지 고심할 때가 됐네요. 그게 제 가장 큰 계획이랍니다

메트로폴리탄 홈페이지 www.met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