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주진규 목사
한국에 살 때 이모와 가까이 지냈다. 어릴 적 한집에 함께 살던 적도 있어 서 정이 많이 들었다. 이모가 호주의 사는 막내 딸의 어린 손주들을 돌봐 주기 위해 떠나고 난 후 그분을 많이 그리워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성 인이 되어 미래를 꿈꾸며 호주로 유학을 하러 가게 되었다 .
그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 이모와 이모부님은 많이 연로해지셨고 약해 보이셨다. 이모부님 건강이 안 좋아서 건강 검진을 받고 담당 의사와 면 담을 하게 되었는데, 영어 소통을 위해 이모부님과 함께 병원에 갔었다. 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환자에게 말해 주어야 하냐고 의사에게 물었 더니 동서양 문화가 달라서 가족들과 의논해서 결정하라고 했다. 일단 은 진단 결과에 대해서 말을 안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못 알아들으시는 이모부님께서 의사와 대화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느닷 없이 저에게 한마디 던지셨다. “의사에게 암인가 물어봐라!”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하고 사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기의 잇속 을 차리기 위해 남을 속이는 새빨간 거짓말도 있고, 남을 배려하고 생각 해 주는 선의의 거짓말, 자신의 진심을 감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하는 “ 나 외롭지 않아, 슬프지 않아”하며 속마음을 숨기는, 우아한 거짓말이라 는 것도 있다고 한다. 폐암 말기인 할머니를 위해, 조카의 가짜 결혼식을 만들어, 세계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인다는 “페어웰 Farewell”이라 는 영화가 있다. 중국계 미국 이민자인 빌리 가족, 일본에 이민 간 빌리 의 큰 아버지 가족들이,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은 중국에 있는 할머니 집 에 모두 모여 (가짜)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따뜻하 게 그린 영화다. 자신이 말기 암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할머니는 오랜만에 모인 자녀들 손주들과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 내게 된다. 그런데 결혼식도 끝나고 가족들이 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영화가 끝났는데도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오는 도 중에 할머니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는 비디오 클립이 잠깐 등장한다. 영 화는 룰루왕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것인데, 사실 Farewell 이 라는 제목도 거짓말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4월 1일은 만우절이다. 만우절에 한 두 번쯤 속아서 허탈한 웃음을 짓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재미삼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도가 지나치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분노를 사기도 한다. 만우절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버전들이 존재하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프랑스에서부터 온 이야기이다.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양력 (그레 고리력) 이전 달력이 있었는데 양력 3월 25일에 신년이 시작되고 4월 1 일까지 춘분제라는 축제를 벌였었다. 그러다 1564년 당시 프랑스의 왕 인 샤를 9세가 달력 계산법을 그레고리력으로 바꾸면서 신년이 3월 25 일에서 지금과 같은 1월 1일로 바뀌게 된다. 통신과 교통이 발전하지 않 았던 당시로써는 역법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나라 구석구석까지 알리려 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여전히 4월 1일을 신년 축제의 마지막 날 로 생각하던 사람들은 그날 신년 선물을 교환하며 새해 인사를 나누었 다. 이렇게 소식이 늦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놀림의 대상이 되었고, 4월 1일이 신년 축제인 것처럼 장난을 치고 놀렸던 것이 지금의 만우절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만우절의 영어표현은 April Fool’s Day이다. “4월에 바보 되는 날”쯤으로 직역해 볼 수 있겠다. 거짓말에 깜빡 속아서 잠시 바보같이 되는 상황 때 문에 사람들이 즐거워한다. 재밌게 한번 웃고 넘어 갈 수 있는 날이다. 신 학교 다니던 시절 주변 다른 대학들과 콘서시엄을 맺어 학점교환을 할수 있도록 하던 제도가 있었다. 다른 대학 분위기도 궁금하고 새로운 교 수님들에게 배워보는 신선함도 느끼고 싶어서 한두 과목 수강을 했었다. 수업 중 토론을 하다가 그곳 대학 소속의 학생들이 우리 학교 학생들을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성경을 그대로 믿는다고?” 그들에게 성경은 연구나 분석의 대상일 뿐, 자신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고문서” 에 불과했다. 성경을 진리로 믿고 있던 우리는 수업 중에 바보가 되었다.
이미지 메이킹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다른 이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에 온갖 신경을 쓴다. 외모를 바꾸고, 차 를 바꾸고, 주거지를 바꾸고, 학력도 위조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 다면 무엇이든지 다 바꾼다. 한가지 바뀌지 않는 것이 있는데 내 속의 마 음이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좀처럼 바뀌지 않는 나의 진짜 모습이다. 그 런데 정작 바뀌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인지 모른다. 세상에는 멋지고 매 력 있는 것이 많은데 그중 속이는 거짓이 많다. 반면, 겉으로는 어리석고 바보같이 보이지만 사람들을 살려내는 진리도 있다.
4월엔 특별한 날이 하 나 더 있다. 만우절과는 정 반대개념의 날이다. 진리를 말하지만, 오히 려 많은 사람들로 하여 금 바보 취급 당하는 날 이다. 예수님께서 인간 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 셨다가, 다시 사신 부활 절이 올해는 4월 4일이다. 크리스천으로 회심 후 유럽전역을 다니며 복 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은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 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 한 (foolishness)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 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 22-24) 당시, 로마제국 등 오랫동안 주변 열강들에게 나라를 잃고 식민지로 살아오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 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외적의 손에서 구해낼 수 있는 힘 있는 구원자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죽임을 당 한 자가 메시아라니… 유대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십자가에 달 렸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전하러 다닌 사도들의 말을 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보 같은 (foolish) 이야기로 무시해 버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보처럼 보이는 십 자가를 진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다. 바보 같은 십자가 가 능력임을 보여주셨다.
많은 사람이 거짓을 벗어내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진리를 분별할 줄 아 는 은혜의 4월이 되길 기원한다.
글 주진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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