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도 개인적인  

인종차별적 남자취향에 대하여

하다못해 씨리얼 종류와 브랜드부터 시작해 거의 모든 것들을 새로 배우고 낯설고도 다양한 생활방식을 수용하며 지내온 뉴욕에서의 5년 동안 스스로에게 가장 놀라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나의 특별한 남자 취향이다. 한국에서는 나이, 출신지역과 학교, 직업 정도면 그 남자에 대한 파악이 거의 80%는 가능했다. 거기서 키가 좀 크면 잘난 척, 좀 작으면 웃긴 척 하는 정도의 차이랄까. 연봉 앞자리 숫자와 굴리는 차에 따라서 어깨에 힘이 좀더 들어가고 덜 들어가는 차이도 있겠다. 글쎄, 별달리 잘난 것 없었지만 내 눈에는 만나는 남자들이 좀 시시했다. 한 두 번 만나보면 뻔하게 보이는 속내가 우스웠고 대기업 타이틀에 대는 폼에 장단 맞추어줄 마음이 없었다. 서른이 넘어 한해 한해 지날수록 이 되어가고 있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압박과 이러다 혼자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눈을 좀 낮추라는 핀잔도 참 많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들이 내 취향이 아닌 것을. 뉴욕에 와서야 알았다. 나는 백마 탄 왕자를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흑마에 가까운 그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 골라먹는 재미, 뉴욕 남자들 

 뉴욕에 갓 도착해 처음으로 밤 나들이(?) 나갔던 날을 기억한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더 이상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는 골라먹는 재미 베스킨 라빈스31 같던 230 루프탑. 뉴욕에 오면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고 중동 사람들도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 놓고 보니 기대 이상으로 그럴 듯 했다. 20대를 한국에서 보내며 나는 남자에게 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별로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 그냥 내가 좀 이상한가 보다 했더랬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어느새 색색별 남자들 사이로 스며들어 되도 않는 영어로 떠들며 눈웃음을 여기저기 흘려대고 있지 않나. 이리저리 간 보며 얼쩡거리는 대신 단도직입 적으로 너 예쁘다, 얘기 좀 나누고 싶다고 확실히 들이대 주는 뉴욕 남자들아마도 그 밤은 값에서 다시 여자 사람으로 급 반등한 주가에 대한 안도감과 전세계 모든 남자들의 샘플을 모아 놓은 듯한 루프 탑의 이국적인 향기에 매료되어 뉴욕 남자 찬양가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맨날 밥만 먹다가 스파게티 맛을 처음 본 어린아이 마냥 아마도 나는 평생 스파게티만 먹고 살리라 가슴 부푼 다짐도 하고, 김희선 같이 낳아 주진 못했지만 너만 못해도 연애만 잘하더라, 너는 뭐가 문제냐며 푸념하시던 부모님께 나는 내수용이 아니라 수출용 이었다며 안심하시란 카톡도 남겼다. 입에 별로 맞지 않던 바닐라 맛은 이제 그만 먹기로, 그 밤 나의 선택은 초콜릿칩 피스타치오였는데 향긋짭조롬 한 맛이 나쁘지 않았다.

# 백인남자와 동양여자, 착각은 자유지만 오해는 금물 

문제는 그들도 착각한다는 데 있다. 내가 만나본 몇몇 백인 남자들은 그들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내가 자신들을 좋아할 거라고 착각한다. 동양인, 특히 한국과 일본 여자들 특유의 공손함과 친절함을 자신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착각하는 것인지, 미국 남자라면 일단 만나고 보는 일부 동양여자들 때문에 생긴 오해일지도 모르겠다. 흘려 들은 이야기로는 일명 옐로캡으로 불리는 일본 여자들 때문에 동양 여자들을 쉽게 본다고도 하고 아마도 낯선 곳에 와서 적응하느라 현지인 남자들에게 친구로든 연인으로든 좀더 호감을 표한 동양 여인들의 뉴욕 나들이 역사의 결과인 것도 같다. 

나는 스크린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백인 남자와 연애한 세대이다. 지구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서 멋지게 악당들을 물리치던 그들, 맨손으로 만한 무기 소유자들을 무찌르곤 사랑하는 연인을 구해내고 뜨겁게 키스하던 그들. 금발머리, 파란 눈, 또렷한 이목구비에 다비드 조각상 같은 신체 비율.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외모 신체조건 상으로는 동양 남자들이 기가 죽을 만하지 싶다. 문제는 당연히 모든 백인 남자들이 스크린에서 보던 그들과 같지 않다는 데 있다. 금발이라고 다 예쁘지 않고 파란 눈이라고 다 신비롭지 않더라는 점. 탄탄한 가슴 근육과 복근, 바늘도 안 들어갈 것 같은 허벅 다리의 소유자들은 모두 아마도 리우드에 모여 사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뉴욕에서 살다 보니 나도 몇 번 여기저기서 백인 남자들에게 데이트 신청도 받아보고 친구 지내던 몇몇에게 구애를 받기도 했다. 재미있는 건 내 거절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었다. 아니 왜? 아마도 백인남자로서 동양 여자에게 거절당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던 건지, 몇 번 만나고 웃어주니 내가 좋아한다고 착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있잖아, 우리는 브래드 피트랑 벤 에플렉이  블랙이랑 다르게 생겼다는 걸 구분 할 줄 안단다. 함부로 들이대지 마라, 우리도 보는 눈이 있다구! 

# 나의 특별한 브라운 취향 

나의 특별한 브라운 취향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각으로야 어차피 한국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예쁜 유럽계 백인 남자를 좋아하고 싶었다. 금발의 푸른 눈, 꽤 괜찮은 이탈리아 계 남자와 데이트를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 깊고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면 어쩐지 말 그대로 조각상을 보는 것 같고, 인형과 대화하는 것 같아 인간적인 교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통탄할 일이지만 이 역시 어쩌겠는가. 내 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독립기념일 불꽃축제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일어났다. 갈색피부의 인도, 아랍계 남자들을 보면 볼이 발그레해 지더라는 것. 너는 왜 피넛버터보다 초콜렛 칩 피스타치오를 좋아하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그냥 그게 더 맛있어요 할 밖에. 화들짝 놀란 사실은 우리 엄마도 나와 취향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어느 날 무심코 뉴스를 보는데 석유관련 내용이 나오면서 석유값을 쥐락펴락하는 아랍 사람들의 영상이 비춰지자 엄마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남자는 저쪽 남자들이 멋있는 것 같다며, 너는 뉴욕에 있으니 좋겠다시며어머나. 

 까놓고 말해서 내 취향의 갈색피부 남들은 비교적 남성 우월적 사고를 많이 갖고 있고 대체로 무례하며 문화나 교양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최소 한발짝 이상 뒤쳐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에게 화학반응 하는 것은 아직 정제되지 않은 갈색 속에 남아 있는 거친 그대로의 순수함 때문인 것 같기도. 그게 아니라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냥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취향인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어쩌면 몹시도 인종 차별적인 내 남자 취향이다. 나만 그런 것인지, 어딘가 공감하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서 한번쯤 떠들어 보고 싶었다. 어디 누구 갈색 피부에 가슴 가득한 체모 보면 설레는 분?   

글 MEE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한국에서 잡지기자, 문화재단 홍보, 문화 마케팅 분야에서 10년간 일하다 뉴욕으로 온지 4년. 현재는 간간히 칼럼을 쓰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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