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김덕수

사물놀이 신명으로 세계 평화를 기원하다.

명인 김덕수

사물놀이 라고 하면 마치 연상작용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우리 고유의 장단과 소리를 하나로 묶어 사물놀이라는 쟝르를 탄생시키고 마침내 세계가 감동하는  한국의 대표음악으로 승화시킨 명인 김덕수씨가  바로 그다. 사물놀이 탄생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 문화원과 뉴욕 취타대가 공동 주관으로 엮은 ‘국악 대축전’ 행사를 위해 뉴욕, 뉴저지 그리고 필라델피아를 차례로 방문하고 있는 김덕수씨를 맘앤아이 인터뷰 자리에 모셨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날 못지 않은 에너지와 사물놀이 명인의 신명을 그대로 지닌 그야말로 인간문화재였다.

반갑습니다 김덕수 선생님, 사물놀이는 국내보다 해외 연주가 많다고 들었는데 바쁘시죠?

네, 안녕하세요. 제가  1968년에 처음 미국 공연을 시작으로 한국, 외국 합쳐서 연간 100회 정도 연주를 합니다.  오늘 저녁 공연 끝나면 밤비행기로 전라도 남원으로 가서 다음날 공연 준비를 해야되고요. 해외 연주가 많은데 해외 한인 대상의 연주보다 외국인 대상의 연주가 훨씬 더 많습니다. 60년간  5000회 이상 공연을 했을겁니다.

공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외부에서 지내시겠어요.

그렇죠. 집 떠나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사실 지금은 뭐 크게 문제가 되지않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많은 부분 어려운 점이 있었죠. 지금은 가족들이 다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합니다. 사실 가족도 가족이지만 공연 때문에 집 떠나 혼자 지내는 내가 많이 힘들었죠. 제가 대학에 몸담은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학기 중에는 공연을 많이 못하고 학사일정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서 바삐 다니고 있어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연주하면 건강해지고 연주 안하면 오히려 건강이 안 좋아져요. 공연하면 오히려 재충전이 되니까.

이번 미주 공연은 어떤 취지로 오신건가요?

제가 1978년에 사물놀이를 처음 만들었는데 올해로 40주년이 되었어요.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 문화원과 뉴욕 취타대가 주관하여 국악 대축전을 기획했고 공연 차 오게되었어요.

사물놀이 탄생  40주년을 맞아 소회가 남다르실 같아요.

1978년2월 22일에 서울에 있는 공간 사랑에서 첫연주하고 지금 40년 5개월이 되었네요. 지난 40년 동안 가장 잘한 일이 전통 공연예술의 맥박 같은 사물놀이를 만들어 명맥을 유지해 온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1952년 생인데 전시에 태어났어요. 일제시대도 그랬지만 한국이라는 근대사에서 보면 격동기에 태어났잖아요. 우리 생활문화 속에 녹아있던 전통예술, 문화예술이 다 바뀌었어요. 사실은 많은 부분을 잃었어요.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정서적인 면이 많이 사라졌죠. 인간세상의 근간이 되는 관혼상제 문화도 다 없어졌고요. 그렇게 사라진 것들이 너무 아쉬웠어요. 1970년 말에 제가 사물놀이를 구상할 때, 이 악기들은 일제시대에도 숨겨서 빼앗기지 않았던 악기들이었거든요. 그렇게 목숨 걸고 지켰는데 사라져가는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마치 우리의 혼, 정신이 사라져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악기 꽹가리, 징, 장구, 북은 지켜야겠다 다짐하게 되었죠.  그래서 그 네 악기로만 연주되는 형태를 고민하게 되었고 사물놀이를 만들었어요.그런데 재미난 것은 한국에서 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더 인정해주고 비싼 개런티를 주고 공연으로 초청해주더라고요. 미국 관계기관이나 에이전트가 미국사람들이고 외국인을 위한 공연을 많이 다닌 편이에요. 그런측면에서는 오히려 성공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죠.

유년시절부터 칠순이 되시도록 그야말로 외길을 걸으셨어요.

그렇죠. 제가  5살 때 남사당의 일원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조치원 난장에서 인간탑 맨 꼭대기에서 춤을 추는 무동(새미)을 했어요. 새미는 애들만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 일곱살 때 전국 농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중고)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세계 무대로 진출했어요. 1965년에 한국민속가무 예술단과 리틀엔젤스 단원에 뽑혀서 각종 해외 공연에는 빠짐없이 참가했고, 이후 사물놀이 만들어서 발전시키고,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며 지금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어요. 60년이 됐어요 남사당 출신에서 오늘이 있기까지. 정말 하나님과 조상님께 감사하죠 저는. 물론 그 과정은 어렵고 고통스러웠지만 제게 은혜를 주셔서 한가지 내가 잘하는 일로, 내가 좋아하는 일로 한 생을 살았잖아요. 너무 감사하죠.

사물놀이 즉, 네가지 악기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사물은 네가지 악기는 꽹가리, 징, 장구, 북이고, 이들 소리가 자연현상을 의미해요. 꽹과리는 천둥, 장구는 비, 북은 구름, 징은 바람을 상징하죠. 사물놀이가 내포하고 있는 철학은 하늘과 땅과 인간을 바탕으로 한 천지인 사상 및 친연사상(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서로 잘 통해야만 그 안에 사는 사람이 풍요롭고 평안해질 수가 있다는 것)을 담고있어요.이들 네악기가 빚어내는 우리 고유의 앙상블을 통해 지구온난화, 미세먼지 현상 등 글로벌한 기후 변화의 문제와 환경 및 생태계 보호와 보존의 이슈에 접근하고 범 지구적 차원의 노력에 힘을 더하는 것이 목적이고요,  나아가 세계에 평화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저희 사물놀이의 궁극적인 바램이죠.

사물놀이 중에서 선생님이 담당하시는 악기가 장구인데, 장구를 하게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장구를 제일 잘하는 모양이죠.(웃음) 원래 모든 연주자들이 모든 악기를 다 연주해요. 악기 뿐만 아니라 소리도 하고 피리도 하고요. 다들 돌아가면서 여러 악기들을 연주하죠. 사물놀이에서는 꽹가리가 지휘자 역할을 합니다.

서양음악은 악보를 따라 연주하는데 사물놀이에도 스코어가 따로 있나요?

 예전에는 있었지만 현대로 오면서 많이 변형되었어요. 그런데 저희 사물놀이 팀은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지는 않고  악보를 넘어서는, 악보로는 표현되지 않는 서로간의 무언의 가락을 함께 연주하죠. 다른 악기 소리를 들으면서 동시에 합주를 하는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농악에는 태평소, 날라리 멜로디 악기가 있잖아요. 그런데 사물놀이는 리듬악기 밖에 없어서 연주가 단조로울 같아요.

악기는 리듬악기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아요. 사물놀이의 리듬 안에는 여러 다이나믹이 있고 기승전결이 있거든요. 그리고 무대에서 콘서트를 구성할 때는 사물놀이의 기본 리듬에다 무, 악, 극이 더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죠. 단조롭거나 지루할 틈이 없어요.

인간문화재는 정신과 실력을 계승할 후진을 양성하는 것이 무척 중요할 같아요.

40년 전에 사물놀이를 만들면서 같이 계획한 것이 있어요. 사물놀이의 대를 잇는 것과 새로운 레파토리와 교재개발인데, 대학에서 20년동안 재직하면서 교재개발을 열심히 했어요. 비단 사물놀이에 국한하지 않고 가무악 전반에 관해 20년간 기록으로 남겼죠. 전승하기에 충분할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죽기 전에 대한민국 리듬 총보, 신명의 뿌리 총보를 완성해야죠. 그런  사명의식을 갖고 작업하고 있어요. 한국의 국악은 사실 서양악기에 맞춰서 변형되어왔어요. 민족적 전통을 지켜오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다가 해외 유학파들이 들어오면서 서양음악적인 요소들이 전통음악을 잠식하고 지배하게 되었죠. 연극도 마찬가지에요. 한국적 전통 연극을 고수하던 사람들이 유학파들에게 밀리기 시작해서 지금은 한국 연극무대에 파리연극, LA 연극이 판을 치고있어요. 세상이 변했어요. 심지어 국악도 그래요. 국악이란 그야말로 한국음악인데 그걸 서양음악에 맞춰서 개량하기 시작했어요. 25현 개량 가야금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는 시대가 되었잖아요. 아무리 세계화도 좋지만 자기 것을 고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잊고 살고있죠. 국악도 한계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더욱 사물놀이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하게되죠.

사실 미국의 여러 대학에 사물놀이팀이 있다고 해서 놀랐는데요, 언제, 어떻게 보급이 되었나요?

원래 1980년대 초, 그러니까 제가 30-40대였었죠. 우리의 것을 세계에 알려기 위해 우선 로스앤젤레스 쪽을 공략했어요. UC 버클리를 시작으로 UCLA, 샌디에고 등 서부 여러 대학에 직접 악기를 사다주고 교재와 비디오 보여주면서 사물놀이를 보급했어요. 처음 한동안은 큰 성과가 없었는데 20-30년 지나면서 지금은 미 전역 200개 대학에 사물놀이가 전해졌어요.  그러다가 살짝 주춤했는데 요즘은  1980년대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학생세대들이 미국으로 이민오면서 그 사람들이 다시 붐을 일으켜주고 있어요. 아주 순수한 의도로. 그래서 다시 불이 붙었죠.

사물놀이 보급에 성과를 얻으셨는데 앞으로 다른 계획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한국문화원을 중심으로 관련 자료들이 각 대학으로 보급되고 있어요. 어떤 외국분이 사물놀이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일하고 있을 정도로 많이 알려졌죠. 자국민도 하기 어려운 공부를 외국인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사물놀이에 대한 관심이 적지않다는 반증이거든요. 앞으로는 이들을 네트워크로 만들어서 언젠가 센트랄 파크에서 대규모 사물놀이 공연을 한번 하고 싶어요.

이번 국악 대축전 공연의 정신이랄까, 주제는 무엇인가요?

저는 공연 차 세계 수많은 나라를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나라를 가더라도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진 정서는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독교, 불교, 유대교의 예식이나 아프리카의 제의식 등 모든 종교의식은  형식면에서 조금 차이가 있을 뿐 놀랍게도 다 동일해요. 그래서 어딜가든 공연에 부담이 없었어요. 결국 인간이 구하는 것은 평화와 사랑이죠. 그런 맥락에서 보면 서로 다른 인종이지만 모두가 한가지의 염원을 희구하고 있거든요. 이번 국악 대축전은 월드전통오케스트라와 연합합창단의 공동공연으로 이루어지는데요, 하늘, 땅, 인간 그리고 자연이 모두 조화를 이루어 평화를 염원한다는 의미를 담고있어요. 온 세계의 염원과 맥을 같이 하는거죠. 우리가락, 우리 신명으로 세계에 평화를 전하는거에요.

공연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방법이나 팁이 있다면 어떤 것을 있을까요?

공연을 잘 보기위한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그냥 사물놀이도 음악자체로 감상하는 자세면 됩니다. 좋으면 그냥 좋다고 느끼면 되죠. 사실 사물놀이는 우리껀데도 불구하고 특별한 편견을 갖고 있어요. 마치 감상에도 어떤 형식이나 방법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거죠. 그냥 네가지 악기를 열심히 감상하고 있는대로 즐기면 됩니다. 사실 악기의 소리 속으로 집중하려고 노력하면 안들리던 소리도 들리거든요. 관객 스스로가 집중해서 즐기려는 자세만 있으면 됩니다. 뭐 사물놀이 뿐만 아니라 모든 연주가 다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준비없이 열린 마음으로 와서 즐기면 되죠. 서양음악은 부담없이 와서 즐기면서 한국음악에 대한 편견때문에 공연히 그러는게 아닌가 싶네요.

뉴저지 공연 리허설을 앞두고 잠깐 시간을 내주셨는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공연에 뉴저지 많은 한인들이 참여해서 사물놀이의 진수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음악, 사물놀이로 세계 평화를 전하는 일에 저희 맘앤아이도 마음으로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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