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스타일을 대변하는 건축
글 Windy Lee 에디터
맨해튼 42번가는 뉴욕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가장 번화한 거리다. 이 거리는 뉴욕의 풍요로운 역사와 끊임없이 변하는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대표하는 건축물의 놀라운 조합을 선보인다. 특히 맨해튼 동쪽 42번가는 각기 다른 시대와 스타일을 대표하는 명성 있는 건축물들의 경이로운 각축장이자 보물 창고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웅장함 뒤로 아르데코의 우아함과 미래주의가 반영된 크라이슬러 빌딩, 기업의 비전과 신념이 오아시스처럼 반영된 모더니즘 양식의 포드 재단 건물, 1920년대에 미국 최초로 계획된 역사적 주거 단지인 튜더 시티, 이스트 리버 앞에 우뚝 서서 국제 외교를 책임지는 유엔 본부는 맨해튼의 상징적인 건물들로 이 도시의 매력을 대표한다. 각각의 시대 정신과 비전이 담긴 이 매력적인 건축물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적 스펙트럼이 조금 더 넓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맨해튼 이스트 42번가를 따라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부터 UN 빌딩까지 솟아있는 건물들을 보며 천천히 걸어보자. 친숙했던 도시가 낯설어지면서 일상이 여행이 되는 마법이 시작될 것이다.
하루 75만 명의 통근자들을 감당하는 보자르 양식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뒤로, 안개 낀 밤, 고담 시티의 상징적 건물로 손색없는 크라이슬러 빌딩이 조용히 빛을 발한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자동차 산업이 선도하는 경제적 초호황기를 구가 중이었다. 또한 미래주의에 경도된 이 나라는, 교통과 통신의 발전에 열광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후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반영된 건물이 바로 크라이슬러 빌딩이다. 자동차 기업 크라이슬러의 창업자 월터 크라이슬러는 뉴욕 한복판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겠다는 야심을 품고 ‘하늘을 향한 경주’에서 울워스 빌딩과 40 월 스트리트 그리고 파리의 에펠탑까지 제치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소유주가 되었다. 그러나 그 아성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완성으로 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자동차 산업의 성공과 미래주의가 반영된 크라이슬러 빌딩은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라디에이터 캡과 앰블렘에 영감을 받은 디자인 요소들이 반영돼, 아르데코 양식과 삼각형 창문 그리고 상층부를 감싸는 스테인리스 스틸과 뾰족한 지붕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합으로 우아하게 완성되었다. 또한 대리석으로 꾸며진 화려한 로비는 라디오 주파선의 영감이 엘리베이터와 벽면 하단을 장식했고, 당시 첨단 교통수단들은 천장 벽화로 그려지며 웅장함을 더했다. 크라이슬러 빌딩이 이젠 가장 높진 않지만,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마천루로 <섹스 앤 더 시티>, <고질라>, <스파이더맨> 등 뉴욕 배경의 대작 영화와 TV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
크라이슬러 빌딩 건너편에는 같은 해에 완공된 아르데코 양식의 데일리 뉴스 빌딩이 있다. 이 건물은 당시 뉴욕시 주요 신문인 데일리 뉴스의 본사로 사용되면서 신문 사업의 활기찬 역사를 대표했다. 이 빌딩은 기하학적 형태, 복잡한 장식, 선명한 수직선이 특징인 아르데코 양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정문 파사드에는 멋진 조각상과 정교한 장식이 시대의 품격을 드러낸다. 건물 로비에는 데일리 뉴스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커다란 지구본이 놓여 있다. 사실, 데일리 뉴스 빌딩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이 평소에는 신문 기자로 분하면서, 이 건물이 그의 직장인 데일리 플래닛 본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인공이 지구본 앞 회전문을 돌며 슈퍼맨으로 변신했던 장면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덕에 여전히 이 건물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거대 지구본을 품은 데일리 뉴스 빌딩의 독특한 외관은 강력한 저널리즘의 상징으로 수많은 영화와 TV에 신문사나 기업 본사로 사용되면서 뉴욕의 건축사와 영화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다시 북쪽으로 길을 건너 튜더 시티에 다다르면, 사회 정의와 인류 복지 증진을 목표로 하는 포드 재단 빌딩이 한눈에 들어온다. 1968년에 완공한 이 건물은 모더니즘 건축의 훌륭한 표본으로 손꼽힌다. 우선 포드 재단 건물의 건축적 아름다움은 혁신적 디자인에 있다. 유리 커튼 월로 구성된 화려한 입면은 주변 환경을 반영하며 자연광을 내부 공간으로 유입한다. 또한 공공에 개방한 멋진 아트리움은 40여 종의 나무, 덩굴, 관목이 자라는 녹지로 가득 채워 실내 오아시스를 조성한다. 포드 재단 빌딩은 맨해튼 오피스 빌딩들 가운데 실내 공공 공간 사례를 정착시켜 널리 인정받은 최초의 건물이기도 하다. 재단의 사회 정의, 인간 복지 및 평등을 촉진하는 미션은 건축 디자인과 건물의 목적에 반영되고 있으며, 우아한 디자인, 녹지 공간의 통합, 지속 가능성 강조 등은 이 건축물을 뉴욕시의 보석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