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 나노 테크, 이혜연 대표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삶’

나노 테크놀로지 연구 분야의 최정상 아이콘, 마라 나노 테크, 이혜연  대표의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사진: 도유진, 인터뷰 및 글 : 맘앤아이 편집부

10억분의 1의 세계. 바로 나노과학의 세계이다. 모든 것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나노’까지 들어가다 보면 기존의 성질과는 전혀 다른 4차원의 세계가 펼쳐진다. 나노를 연구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 10억분의 1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 누구도 아무도 가보지 않은, 어디까지 가야 끝나는지, 끝이 있긴 한건 지 모르는 탐험의 연속, 그래서 나노테크놀로지 28년 연구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는 마라 나노테크 이혜연 대표.

발표 논문만 100여개에 이르고, 각종 국제 학회에서 인바이트 토크만 50회를 넘겼다. 나노 바이오 메디컬 디바이스 개발로 그 깐깐하고 폐쇄적이라는 일본에서 외국인 연구자로 현지 연구인들을 모두 제치고 ‘나노테크놀로지 타쿠미 (장인)1호’라는 타이틀을 받은 그녀가 말하는 과학, 나노테크의 세계,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삶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고장난 TV작은 휴즈 하나 교체로 고쳐내던 전파상 아저씨

지금은 나노과학 분야의 아이콘이 된 이혜연 대표가 과학에 눈을 뜬 것은 고장난 TV를 고치던 전파상 아저씨를 덕분이었다. 부모님이 서울 친척 모임으로 부재 중이셨을때 동생들과 보던 TV가 고장이 났다. 딸 셋의 장녀, 동생들에게는 신적인 존재였던 맡언니로서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이혜연 대표는 당당하게 브라운관을 열고 TV를 고치기에 앞섰다. 처음에는 TV가 곧잘 나와서 동생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금새 다시 고장이 났고 이것저것 만져보았지만 도무지 고쳐지질 않았다. 부모님이 오실시간이 다 되어 전파상을 찾아갔고 수리기사가 방문했다. “학생, 잘못 했으면 이 아파트가 다 날아갈뻔 했어~” 하시는 아저씨의 말에 크게 놀랐지만 더 놀라웠던건 어떻게 해도 안되던 TV가 작은 휴즈를 하나 교체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 졌다는데 있었다. “그때 작은 휴즈 하나로 TV를 고친 전파상 아저씨가 너무 멋있었어요. 큰 TV가 작은 휴즈하나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보았죠. 과학에 굉장히 매력을 느낀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도 종종 이 에피소드를 들려주곤 합니다.”

 

1년만 더 1년만 더, 오랜 나노과학 연구의 시작

1990년 남편과 결혼해서 오사카 대학으로 가 학위를 받고 96년에 귀국했다. 이후 4년, 이혜연 교수 나이 35세, 남들 보다 빨리 자리잡고 또 성공하고 속된 말로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생각했다. 일본에서 같이 학위를 받아 온 남편은 이미 대학교수가 되었고 시간 강사이긴 했지만 존경 받는 직업에 승승장구하고 있던 본인 역시, 후배들 사이에선 롤모델로 불리울 만큼 일도 가정도 경제적인 안정까지 무엇하나 남부러울 게  없었대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 일본 지도교수로 부터 연락이 왔다. 나노 연구를 해보자는 것. 당시만 해도 나노과학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절이라 별 관심이 없었다고. “남부러울게 없었어요. 그런데 그냥 아들 데리고 미국에 가볼까 하는 마음은 있었죠. 잘나가는 인생에 정점을 하나 찍어볼 마음으로 말이죠. 하하” 그러다 생각해보니 미국에 가면 모든 걸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일본은 달랐다. 이미 많은 기반을 마련 해 놓은 곳이었기에 6개월에서 1년 이라는 지도교수의 제안을 쉽게 받아 들였다고.

“하루에 3시간씩 자고 연구하는 인생이 시작된 거죠. 6개월이 1년이 되고 1년만 더 1년만 더 하면서 11년이 지났습니다. 포닥에서 조교수로 승진하고 많은 연구 결과들을 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막내인 딸을 데리고 와서 지내다 보니 이제는 딸이 일본어 밖에 못해서 더 머무르게 되고, 이것만 하고 가야지 하면서 무려 11년을 나노과학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어요.”

일본 보수 언론이 인정한 나노과학의 타쿠미 1

과학연구 분야에서 외국인으로, 또한 여자로서 일본사회에서 인정받기란 말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게다가 그 보수적인 일본 언론이 그녀를 나노 테크놀로지의 타쿠미 1호라고 대대적으로 공언했다는 것은 가히 놀랄 일이다. 그만큼 그녀의 연구 업적이 탁월했다.

“2003년에 일본에서 특허를 받아서 대서특필 되었어요. 무엇보다 그 보수적인 일본사회에서 다른 연구자들을 제치고 외국인인 제가 타쿠미라는 호칭을 받았다는 게 굉장히 자랑스러웠어요. 신문에 그렇게 대서특필 된 후 한동안 연구소가 조용했어요. 다들 자존심이 상한거죠. 아무도 대놓고 뭐라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았어요. 심지어 학교에서조차 공식적으로 축하 해 줄수 없다고 할 정도 였으니까요.” 특허를 받자 많은 회사에서 나노 바이오 메디컬 디바이스를 상업화하자고 제안해 왔지만 나노테크놀로지라는 분야 자체가 굉장히 복잡하고 고도의 장비와 숙련된 기술 등이 필요하기에 섣불리 상품화 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혜연 교수의 판단이다. 이는 나노 바이오 메디컬이 그 가능성에 비해 산업화가 많이 이루어 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아 있어요. 특허를 받고 10년만 더 하면 되겠지 했는데 그 10년이 부족했습니다. 제작년에 제품을 완성해서 시판하려고하니 또 안정성의 문제가 있었어요. 실제 연구 제품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프로세스가 있더라구요. 대학교수들이 알기는 힘든 단계가 있죠. 너무 지쳐서 그만두자 할 시점도 지나고 마지막 단계를 하고 있는데 이제는 또 시장 경쟁이 남아있어요.”

 

과학자도 부와 명예를 모두 누릴 있다는 모델

2년전, 이혜연 대표는 대표가  보유한 특허를 가지고 뉴욕에 나노 바이오 메디컬 디바이스를 연구 개발하는 마라 나노테크 R&D 회사를 설립하고  작년에는 한국 중기청 과제를 받아 마라 나노테크코리아 지사를 세웠다. 나노 바이오 메디컬 분야의 최종 목표는 개인화된 맞춤형 의료의 구현이다. 같은 비만 환자라도 개인별로 원인이 다르고 따라서 치료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

“진단 플랫폼을 개발했으니 이것으로 상업화 해보자는 생각으로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제 딸은 연구자로서의 제 인생을 보았습니다. 열심히 연구하고 헌신한 부분은 동경하고 인정하면서도 본인은 저와 같은 삶은 살고 싶지 않다고 해요. 연구를 한다는 게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고 늘 연구에 묶여서 개인 시간이 거의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요. 저는 과학자가 되어도 부와 명예를 모두 누릴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습니다. 똑똑한 아이들이 과학자가 되는 꿈을 꿀수 있도록 말이에요.”

과학은 즐기는 자의 것, 그래서 과학캠프도 선착순

나노테크놀로지 분야의 최정상에 선 이혜연 교수에게 한가지 꿈이 있다면 STEAM 교육, 후대양성이다. 대단한 과학자들을 키우겠다는 게 아니라 과학의 즐거움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 재미한인과학기술자 협회(KSEA)의 과학캠프(YSTLC)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과학을 가르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발휘하고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저의 목표라면 목표에요. 경쟁이라는 구도가 분명 필요하지만 어릴때부터 경쟁 속으로 몰아갈 필요는 없다고 봐요. 상을 받고 부모님이 기뻐하고 성취감을 느낄 지는 모르지만 그 이면은 피폐해 지기 마련이거든요.” 본인 역시 어린 시절 많은 대회에 참가해 또 많은 수상을 했다. 그러다 보니 1등, 2등이 아니면 아에 의욕을 잃어버리는, 끝난 게임으로 포기하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이번 캠프는 특별히 8박 9일로 오직 과학만 하는 캠프가 될거에요. 팀웍을 이루어 주말 내내 과학 캠프를 하고 작더라도 결과물을 만들어 낼거에요. 콜롬비아, 뉴욕의 나노센터, IBM을 방문하고 하버드 대학 캠퍼스로 들어가 직접 하버드 의대 교수 강연도 듣게 됩니다. 멋지게 차려입고 실제 1500명이 모이는 UKC 행사, 세계적인 석학들 앞에서 아이들이 발표하게 할 겁니다. 물론 그 분들이 실제 발표하고 강연하는 것도 볼거구요. 아이들에게는 이 분들이 지나가면서 해주는 한 두마디가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게 할거라고 봐요.”

과학캠프(YSTLC) 모집 정원은 30명, 참가를 원하는 아이들은 에세이를 써야 하지만 이혜연 대표는 ‘선발기준은 선착순’이 될 거라고 말한다. “저는 영재교육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잘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하고 싶은 아이들을 교육하고 싶어요. 수학올림피아드, 시멘스 이런 대회에 나갈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과학을 통해서 적극적인 사고방식, 발표 능력,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북돋아 주는 게 중요합니다. 자기역량을 발휘하고 숨겨진 재능을 끌어내 주는데 목적이 있지 원래 잘하는 아이들 모아서 상주는 건 안하고 싶어요.”

 

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산다

언뜻 보면 대학교수 아버지 아래 교육 잘 받고 연구자로서의 길을 순탄하게 걸어온 것 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 10억분의 1 이라는 나노 과학을 연구하는 삶이 그리 쉽지 않았다.

“일본에서 연구를 시작할 때 한달에 한번 쉬고 기본 새벽 3-4시까지 연구하기가 일수였어요. 아침에 아이들 준비시켜서 학교 보내고 다시 학교로 달려가는 생활이 반복됐고 기본적으로 잠을 못잤어요. 쓰러지고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죠. 어느 날은 일어났는데 발이 퉁퉁 붓고 발가락이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어요. 서른 여섯 일곱의 젊은 나이에 면역력이 바닥을 쳐서 바이러스가 들어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혜연 대표는 아직도 연구를 할 때 가슴이 뛴다고 한다.  “과학자만이 아는 희열이 있어요. 우리끼리는 중증이라고도 하는데, 연구 결과 데이터를 볼 때면 어린 아가씨가 연인을 만난 것 보다도 더 가슴이 뛰어요. 내가 예측한 연구 결과가 딱 나올 때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어요. 50살에 이 두근 거리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가슴뛰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어서 행복해요.”

가족은 인생에 나누어 없는 공통 분모

돌아보면 가장 잘한 일은 어떤 상황에서는 아이들과 함께였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11년 연구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오게 된 계기도 아들, 딸과 함께 하기 위해서 였고 특히나 FIT 진학을 원했던 딸과 함께 뉴욕으로 와 3년째 생활하고 있다. 일본에서 연구하던 시절 일년에 3차례씩 일본으로 와 적극적으로 서포트해주신 친정 부모님의 공로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다고.

“지금까지 98개의 논문을 썼습니다. 올해 100개를 채우겠지요. 저는 논문 300개 500개 쓴 남자교수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그들은 연구만 했지만 저는 아이들도 키우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우리 아들은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연구하는 저에게 전화해서 동생 목욕도 시켰고 우리는 이제 잘거니까 엄마 연구 마음껏 하다 오라고 응원해줬었어요. 남들은 놀러가는 일요일에 제 연구실에 갇혀서 12시간씩 보내는 일도 많았지만 불평하지 않았죠. 제가 가장 아끼는 보물 중에 하나가 우리 딸한테서 받은 상장이에요. 항상 자기의 일과 가사에 열심히 인 우리 엄마에게 표창장을 줍니다라고 쓰여 있어요.”

 

뉴욕대 석좌 교수인 미치오 카쿠 교수는 “가장 작은 나노의 세계를 이해하면, 가장 큰 우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둘은 결국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세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이 파스퇴르는 “무한히 작은 것들이 무한히 큰 역할을 한다.”라고 나노과학을 표현했다.

이혜연 대표가 연구에 매진한 매일매일의 일상들, 그리고 가족 간에 작은 이해와 서포트들이 오늘의 나노과학 타쿠미 1호, 마라 나노테크, 나노 바이오 메디컬 특허와 같은 큰 결과를 만들어 냈다면 세계 최정상의 결과만큼이나 우리의 작은 일상들도 동일하게 위해 함을, 그 둘은 매우 꼭 닮아 있음을 본다. 앞으로도 더 큰, 혹은 더 작은 나노 과학의 세계로의 가슴뛰는 탐구를 멈추질 않을 이혜연 대표에게 응원을 보낸다.

이혜연 대표

CEO/President, Mara Nanotech, Inc, NY

Visiting Professor, Department of Pharmaceutical Sciences, Northeastern University, MA

 

– Ph.D in Inorganic and Physical Chemistry, Osaka University, Japan

– M.A.Sc. in Applied Chemistry, Pukyong National University, South Korea

– B.A.Sc. in Applied Chemistry, Pukyong National University,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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