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 감독, 전후석 변호사

쿠바 한인 이민자의 삶을 통해

한인 이민사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 감독, 전후석 변호사

 

뉴욕의 잘 나가던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되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이력이지만 한인 이민자의 발자취를 따라 이민 역사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는 젊은 변호사의 진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진심 어린 존경의 마음이 생겨난다. 쿠바 한인 이민사를 담백하지만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담아내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전후석을 만나 보았다.

 

 

진행 이수정_*맘앤아이 편집장 인터뷰 및 글 이영란_*맘앤아이 에디터      

촬영 모임 포토그래피

*맘앤아이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인 변호사에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변신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열심히 변호사로 근무하던 중, 2015년 12월에 갑자기 쿠바에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별다른 여행 계획도 없이 며칠 만에 쿠바행 비행기 표를 끊었죠. 호스텔을 예약하고 나니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 여행한다는 것이 살짝 막막하더군요. 그래서 공항 라이드를 부탁했고, 나오신 분이 우연히 한인 4세였습니다. 한인을 만났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초대를 받아 집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가족사를 듣게 되었고, 아버님이 쿠바혁명에도 참가한 한인 지도자 임은조(1926~2006, 쿠바 이름 헤르니모Jeronimo)씨이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임천택 선생이라는 말을 듣고, 자연스럽게 쿠바 한인 이민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길로 쿠바 한인 가정들을 취재하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필연 같은 우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맘앤아이 특별한 계기가 있긴 했지만, 그전에도 한인 이민자의 삶에 대한 관심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에 한국으로 돌아가 고등학교 2학년까지 수학 후 다시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사는 한인 1.5세나 2세들은 누구나 한 번씩 고민하는 부분이겠지만 스스로 마이너리티라는 생각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존재감과 소속감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습니다. 한인들이 미국 주류에 동화되어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그것은 우리 정체성 유지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학 때 수업에서 1992년 LA 폭동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당시의 이야기를 배우며 한인 이민자 스스로의 힘으로 이민 사회를 지켜 나갔던 모습들을 보면서 이 사건이 코리안 아메리칸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요.

'디아스포라 Diaspora'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흩 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의미 한다. 특정 민족이 자의나 타 의에 의해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

영화 헤로니모 제작팀(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훈, 제이슨, 그레이스, 전후석 감독, 제니퍼, 윌리엄, 프리미티보 임 김, 마사 임 김)

*맘앤아이 직접 쿠바에서 취재하신 이민자들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쿠바 한인의 역사는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05년 대한제국 시절, 피폐한 삶에 지친 각계각층의 사람들 천여 명이 금의환향을 꿈꾸며 멕시코에 4년 계약 노동자로 이주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애니깽(용설란)’농장에서 약속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을 했죠. 4년 계약이 끝난 후, 조국은 한일합방으로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조국이 없어져 멕시코 전역을 떠돌던 이들 중 300여 명이 1921년에 쿠바로 향했습니다. 쿠바 이민 역사의 시작이죠. 조국 없는 이민자들의 쿠바에서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한글학교를 결성하고, 쌈짓돈을 모아 조국의 독립운동을 돕기도 하면서 한인사회를 지켜 나갔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한인 3, 4, 5세대 한인 후손들은 외관상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음을 알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한국을 잊지 않고 스스로를 쿠바인인 동시에 한국인이라며 선조의 땅을 기억하려 노력합니다.

헤로니모(임은조)와 그의 아내 크리스티나
쿠바의 카르데나스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한인 후손들과 ‘아리랑’, 노사연의 ‘만남’, 소녀시대의 노래들을 함께 불렀던 순간은 너무나 강렬해서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맘앤아이 영화 헤로니모에 대한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는 제가 쿠바에서 처음 만난 한인 패트리샤의 아버지 임은조 씨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헤르니모 임(한국이름 임은조)은 한국에서 쿠바에 노예로 팔려온 부모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쿠바에서 대학에 입학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피델 카스트로의 법대 동기이기도 한 그는, 피델과 체 게바라가 이끄는 쿠바 혁명에 참여하고, 하바나 근처의 시장으로도 활동하는 등 한인 사회를 이끈 인물이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한인회를 창설하고 한글학교와 한인 이민 기념비를 세우는 등 한인의 뿌리를 이어 나가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의 선친인 임천택 선생은 쿠바와 멕시코 한인들의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 정부로 송금한 독립운동가 이었습니다. 헤로니모의 가족사와 쿠바 한인들의 인터뷰, 전 세계에 있는 한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며 조국에는 잊혀진, 그러나 그들의 가슴속에는 조국을 깊이 새기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입니다.

*맘앤아이 현재 영화 제작에 대한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처음 킥스타터로 만 칠천 불을 모금하고 5명의 다큐멘터리 팀을 만들어 2016년 7월에 다시 쿠바를 찾았습니다. 100여 명 이상의 한인 후손들을 만나고 그중 35명의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쿠바에서 돌아온 후 한국과 캘리포니아, 시애틀, 밴쿠버 그리고 마이애미를 오가며 후속 촬영을 진행하였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지난 4월에 제작비 3만 불을 목표로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을 목표 금액을 훌쩍 넘기면서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5월 말에 변호사 직을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제작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제 제작 막바지 단계로 다시 쿠바에 가서 추가 취재를 하고 완성 단계에 있습니다. 완성된 영화는 국제 영화제에 출품할 예정입니다. 아직 공식적인 개봉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맘앤아이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가을에는 쿠바로 돌아가서 지난번 미쳐 만나지 못했던 이민자들의 스토리를 더 담을 생각을 갖고 있고요. 지난번 모금된 금액으로 풀타임 프로듀서와 파트타임 디자이너 등을 고용하여 틈틈이 후반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018년 상반기 중에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더 많은 후원금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약 5만 불에서 10만 불 정도를 추가 모금하여 후반작업과 그 이후 마케팅, 홍보, 배급 등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최근 한 뉴욕의 비영리단체를 통해 헤로니모에 후원을 하는 분들은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 이후의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늘 ‘이 순간순간을 최대한 즐겨라’라는 신조를 갖고 살기 때문에 장기 계획을 미리 짜서 움직이는 천성은 아니네요. 헤로니모 작업을 하는 동안 최대한 즐기고 만끽하여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작품을 내놓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고, 그 이후에 변호사 생활을 할지, 아니면 다른 열정 프로젝트에 임할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고 싶네요.

맘앤아이 영화감독, 변호사라는 타이들이 아닌 한인 2세로서, 정체성에 고민이 많은 한인 자녀들과 부모님들께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헤로니모 영화는 쿠바 한인들의 지난 100여 년 간의 역경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조국에 살던, 재외 동포로서 해외에 거주하던, 과연 한인이라는 정체성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가 입니다. 저 나름대로는 이 작업에 임하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나무의 뿌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신 존재의 의미를 찾고 그 가치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여 하나의 사명의식을 심어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경제적 활동을 통해 안정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냐는 질문보다는, 적어도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더 선행되어야 하고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됩니다. 쿠바 한인들은 멕시코로 노예로 팔려가 쿠바에 재이민을 하여 혁명과 차별과 공산주의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것이 그들에게 아무런 경제적, 안정적 삶을 제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요. 저는 저와 더 어린 세대의 친구들이 이런 질문을 던져보길 바랍니다. 헤로니모를 통해 그 질문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쿠바뿐만 아니라 미 전역에서도 한인 이민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사진은 캘리 포니아에 거주 중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손자, 안필립 씨와 인터뷰 중인 모습)
전후석 Joseph Hoo Juhn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한 후, 시러큐스 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전후석 감독은 코트라KOTRA 뉴욕 지사에서 지식 재산권 컨설턴트 변호사로 근무했다. 지난 2015년, 쿠바 여행 중 우연히 알게 된 한인과의 인연으로 쿠바 한인사에 관심을 갖고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  Jeronimo’제작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영화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 변호사 활동은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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