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지지로 변화를 만들다

인터뷰/글_김해용 

Center for Disability Rights Law

한국에서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는 법률가로서, 지금은 미국에 건너와 더 많은 배움과 경험을 쌓고 있는 그녀. 바로 세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김예원 변호사입니다. 김예원 변호사는 장애인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헌신하며 현재 ‘장애인권법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센터는 발달 장애인, 장애 아동, 장애 여성, 사회적 소수자 등 법적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이들에게 무료 법률 지원을 제공합니다. 즉, 법적 문제에 직면한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잘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 스스로 힘을 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며, 그들의 온전한 회복과 함께 인간 존엄성 회복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국제 연대를 위한 길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예원 변호사의 비전과 삶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변호사님과 장애인권법센터에 대한 소개 및 센터의 역할에 듣고 싶습니다.

2009년, 저는 한국에서 사법 시험에 합격했으며, 현재는 비영리 1인 법률 사무소인 ‘장애인권법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범죄 피해를 당할 수 있지요. 범죄 피해를 당하고도 도움받기 힘든 발달 장애인, 장애 아동, 장애 여성 등 취약한 상황에 놓인 분들만 대리하며 무료 법률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수임료를 받을 수 없는 사건만 하는 거지요. 인신매매를 당해 15년간 돈 한 푼 못 받고 노동 착취를 당한 남성 지적 장애인, 온 동네 할아버지, 아저씨 할 것 없이 가해자들이 얽혀있던 여성 지적 장애인 성 착취 사건의 피해 여성, 자신보다 50살 가까이 어린 장애 여성이나 장애가 있는 친딸을 성폭행한 사건의 피해 여성, 보호자의 학대로 장애인이 된 아동 등이 제 클라이언트입니다. 사법연수원 수료 직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공익 활동을 전담하는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형 로펌이다보니 장애인 인권, 북한 인권, 사회적 경제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며 공익 전반에 대한 이해와 기본기를 다질 수 있어서 제겐 좋은 경험이었는데요. 문제는 그곳까지 온 사건들이 도저히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깊었습니다. ‘초반에 잘 대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즈음 서울시에서 장애인 인권 센터를 개소해, 그곳으로 이직하여 3년간 있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나 차별 현장과 호흡할 수 있어 좋았어요.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해 조사할 수 있었거든요. 다만 늘 열망하던 제도 개선(정책이나 입법 등) 활동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죠. 서울 관내 발생 장애인 사건만 다뤄야 하는 제약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둘째를 낳고 몇 개월 더 고민하다가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장애인권법센터를 설립했어요. 

장애인권법센터는 수임료를 받지 않겠단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사건에 따라 수임료 유무가 결정된다면, 제 이기적인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수임료가 있는 사건만 열심히 할 것 같았어요. 주변에선 수임료를 안 받을 거면 후원이라도 받으라 했는데요. 고민하다 후원도 안 받기로 했죠. 변호사는 사업자인데 후원받는 게 뭔가 어색하잖아요. 자발적으로 안 버는 건데 후원을 왜 받나 싶었어요. 게다가 후원 기반의 활동은 후원자들의 정신과 필요가 제 활동 범위에 투영돼야 하는데, 제가 그럴 깜냥이 못 되는 거 같았어요. 그래도 저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강의도 하고, 책도 쓰고, 연구 용역도 하면서 어떻게든 활동비는 충당하고 있어요. 무슨 숭고한 원칙이 있어서 애써 지키고 있는 건 아니고요. 스스로가 돈 앞에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저를 보호하려고 정한 저만의 방식입니다. 

지금은 어린아이 셋을 기르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법정에 아기를 안고 가서 젖을 물리며 변론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어요. 생후 갓 50일이 지난 셋째를 데리고 법정에 갔을 때였죠. 형사 재판에서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원이 재판 날짜를 잡을 때 피해자 대리인의 일정까지 고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재판은 꼭 참석해야 하는 재판이었고, 아기 봐 줄 사람도 없어서, 아기와 함께 간 거였죠. 법정 경위에게는 변호사 신분증을 보여주며, 제가 피해자 대리인임을 확인시키고 들어갔어요. 하지만 판사님은 비공개 재판에 아기 안은 엄마가 앉아 있으니, 제가 법정 경위를 뚫고 들어왔다고 생각하셨는지 ‘누구세요?’라고 물으셨어요. 상황을 설명드리니 다행히 이해해 주셨어요. 마침 중요한 증인 신문이 있어서 아기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 법정 벽에 붙어 아기띠를 앞에 메고 젖을 물린 채 법정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우연히 이 일이 기사에 나면서 감사하게도 많은 여성 변호사가 제 행동에 공감과 이해를 보내주었습니다.

장애인 권리 옹호와 관련 법률 지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대단히 거창한 생각으로 오직 이 일만을 위해 변호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에요. 저는 강원도 춘천의 시골집에서 나고 자랐는데요. 그러다 보니 사회 비주류에 속하거나, 사회적 환대를 받지 못하는 이들과, 지극히 평범한데 사는 것이 힘든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그들의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면서 그들의 애환이 자연스럽게 보였던 것 같아요. 제가 이타적인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성장 배경이 비주류에 대한 편견을 줄여주었다고나 할까요. 사실 저는 태어날 때 의료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어요. 당연한 듯 처음부터 한쪽 눈으로 살아왔지만, 그 원인을 몰랐죠. 출산 과정에서 발생한 심각한 의료 사고가 원인이었다는 것을 중학생이 돼서 알았어요. 그런데 공소 시효나 소멸 시효가 모두 지나있어서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죠. 계속 원망만 하며 살기보다는 법을 공부해서 저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을 돕겠다고 다짐했어요. 제가 장애인 피해자의 인권 보호 같은 공익 활동에 힘쓰게 된 건 스스로 뛰어나서가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저의 부족한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일부러 좋은 사람들 옆에 머물면서 배우려 했어요. 교회 공동체라든가, 사법연수원 인권법학회라든가, 공익 법률 기금 활동이라든가,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애를 썼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 같아요. 부당한 일을 당해도 돈이 없어서 도움받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절박한 이에게 도움을 주는 거잖아요. 엄청 정의롭거나 대단한 일까진 아니어도, 좋은 방향이라 생각했던 거죠.

맡으셨던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익 변호사로 활동해 온 지금까지 약 1,000건이 넘는 사건을 맡아 처리했어요. 그중에는 시각 장애인도 1종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끌어낸 일을 비롯해 잘못된 제도를 파고들어 개선한 사건도 적지 않습니다. 모든 사건 하나하나 제 기억에 깊게 남아있고, 상세한 이야기는 사례를 조금씩 각색해서 제 여러 저서에도 적어두었습니다. 몇 년 전, 보호자로부터 심한 학대를 당하다 눈 위 뼈가 부러지면서 저처럼 오른쪽 눈을 잃은 아이를 대리한 적이 있어요. 그 재판에서 제가 저의 의안(인공 안구)을 빼고 변론했던 것이 언론에 알려져 당황했던 일도 있어요. 방청석에 기자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피고인들 모두 살인의 고의를 부정했지만, 사건 기록을 봤을 때 아동을 살해 의도 없이 때렸다 보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참혹했어요. 그래서 그 중요 재판을 앞두고 주변 변호사들에게 “의안으로 사는 게 어떨 것 같은지” 물어봤는데, 눈 한쪽이 잘 안 보여 불편하겠다는 것 말고는 다들 별생각이 없는 거예요. 저는 그 삶을 살고 있는 시각 장애인 당사자여서 의안으로 산다는 건 단순 시각 장애인이 된다는 것을 넘어 자존감이나 의료적 처치의 괴로움 등 여러 문제가 동반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그런 문제들을 재판부에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잠시 양해를 구하고 제 의안을 빼서 판사님이 직접 보게 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로부터 ‘개눈깔’이라 불리며 놀림을 받고 자랐는데, 아직 어린 피해 아동이 비슷한 일을 겪을 생각을 하니 참을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가해자는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미국 내 한국 교민들이 자주 마주치는 법적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크고 주마다 법이 달라서 일괄적으로 쟁점이 많이 되는 문제가 어떤 거라고 콕 집기는 어려워요. 다만, 법률이란 게 막연히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죠. 저의 주요 클라이언트가 장애가 있거나 많이 배우지 못한 분들이라서, 한국서 바쁘게 살다 미국 와서 연구년을 보내는 이 시기를 이용해 미뤄뒀던 일을 시작했어요. 바로 한국의 형사 사법 체계를 쉽게 설명하는 영상 콘텐츠 제작이에요. 초등학생과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최대한 쉬운 말로 설명하는 컨텐츠인데요. 물론 변호사들이 제작한 유튜브용 영상들이 이미 많지만, 더 쉽게 설명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장애인권법센터’란 채널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는 형사 사법’ 시리즈 강의를 올리고 중인데, 이제 제법 쌓여서 20개가 넘는 영상을 만들었어요. 범죄 피해자 입장에서 단계별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고 있어요. 처음 사건을 당하면, 어디에 연락해야 하는지, (증거를) 뭘 써내야 하는지, 어디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거든요. 한국이든, 미국이든, 법적 문제를 마주했을 때 용어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는 것이 사건 해결의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장애인 권리 옹호를 위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저는 장애인 인권뿐 아니라 아동 인권, 여성 인권 등 많은 인권 분야에 걸쳐 일하고 있어요. 그래서 분야마다 마주하는 현실적 문제들을 살피는 게 제 일이기도 합니다. 분야마다 현안이 다르긴 하지만, 거창하게 사회적 대변혁을 이루는 것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온전한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며 일하고 있어요. 아무리 정부 부처라 해도 자기 소관 법률이나 해당 사업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다행히 저는 변호사로서 사건 신고부터 판결 확정까지 다 끌고 갑니다. 사건을 잘 지원하기 위해 사회 복지사 및 성폭력 전문 상담원 자격을 따기도 했어요. 각 지역의 연결 가능한 체계를 다 연결해서 종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죠. 그 체계가 전체 사회에서 하는 역할은 일정 부분에 그칠지 몰라도, 잘 꿰어서 한 사람의 인생에 퍼즐을 맞추면 그 사람에겐 극적인 삶의 변화를 만들어줄 수 있어요. 사건을 다루다 추가로 드러나는 문제 개선을 위해 갖은 방법으로 싸우기도 해요. 착취나 학대 상황에 놓인 이들을 구출한 이후라도 만약 그 사람이 수급비를 받고 있다면 취업이 사실상 의미가 없거든요. 월급만큼 수급비가 깎이니까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죄 피해를 겪은 장애 여성을 위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관련 기관에 제안하기도 하고, 지역 사회 돌봄 체계에 연결하기도 합니다. 정답이 없는 길이라 막막할 때도 있지만, 하나하나 풀어나갈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장애인권법센터의 미래 목표와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이 일을 하면서 스스로 가장 많이 경계하는 건 ‘절대 해결사가 되려 하지 말자’입니다. 답답하고 느리다고, 변호사가 전문가로서 상황을 해결한답시고 휘젓기 시작하면 피해자는 오히려 힘을 잃거든요. 저는 피해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같이 공감해야 나설 수 있는 게 법률 지원이에요. 당사자가 잘못된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직접 냈을 때 가장 울림이 있거든요. 저는 도구이자 통로 역할을 할 뿐입니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어갔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사건 초반에 만나는 피해자들은 굉장히 위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기도 합니다. ‘제가 돕겠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한 거다’라고 이야기하면, 피해자들이 어느 순간 속 얘기를 꺼내놓기 시작해요. 나중에는 법정에서 진술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도 생각하게 되죠. 당사자와 제가 깊이 공감할 때,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힘내는 모습을 볼 때, 저도 힘이 납니다. 성격이 급한 편이라 이렇게 일하는 게 안 어려운지 묻는 분도 계시는데요, 생각만큼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당사자인 피해자 이야기에 집중하면 돼요.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막막하면 막막할수록 답은 당사자에게 있음을 명심, 또 명심하는 편입니다. 사람들은 가해자를 어떻게 응징할까 분노하지만, 정작 피해자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소박해요. ‘혼자 살고 싶다’, ‘이사 가고 싶다’, ‘편하게 있고 싶다’ 등입니다. 일단 숨통이 트여야 제대로 살 수 있으니까요. 안전한 주거 공간을 마련해 주고 나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말하기 시작해요. 법적인 절차는 그때부터 하는 거죠. 일단 디딘 땅이 평평하고 단단해야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기에, 저도 조급히 마음먹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하며 그 안에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같이 푸는 데 힘쓰려고 합니다. 회복이란, 망가진 인생을 치유하는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도 존중받는 상태를 의미하니까요.

맘앤아이 매거진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맞벌이 부부이자, 다둥이 엄마로서의 일상은 눈코 뜰 새 없이 휙휙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특히 주말은 쉬는 날이기보다 밀린 일을 더 많이 할 기회라 여겨질 때도 있어요. 물론 법률사무소 대표기 때문에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직장맘과는 조금 다른 생활이긴 합니다. 스위치 온·오프 없이 24시간 병행 체제로 육아와 업무를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시간 조절이 가능해서 아이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있기도 하죠. 어떤 조직은 근무 시간에 아예 아이 얼굴 보기도 어렵지만 저는 가능하니까요. 물론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더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낮에 짧게라도 아이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자체가 복이라 생각합니다. 사건이나 상담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는 집안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수 있죠. 15분만 투자하면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가 해결되고, 청소기를 5분만 돌리면 집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이 해결되니까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해서 제가 수사 기관에 낼 문서를 작성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그사이 이메일을 보낸 저는 빨래를 마저 개고 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지칠 때도 있지만 ‘지금, 이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일념으로 마음을 다잡는 편이죠. 아이들이 더 자라서 제 손길이 귀찮아질 때가 곧 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죠. 각자 삶의 모습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매일 쌓아가는 아이와의 사랑과 공감이 일상을 든든히 버텨가는 힘으로 전환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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