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에 좋은 갤러리가 즐비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에 살고 있다고 해도, 밖에 나가 작품을 즐기며 고급 인프라를 누리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교통, 날씨, 바쁜 스케줄, 컨디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코로나19 재난이 계속된 작금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 독립 큐레이터로서 전시회를 기획하는 전문가가 있다. 그녀는 우리에게 찾아가는 전시, 즉 전시회를 가지 않고도 글과 사진으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맘앤아이의 ‘그림 읽어 주는 큐레이터’를 통해 편안하게 집에서 그림들을 감상해 보자. 오늘의 전시회는, 지난달 소개한 그룹 전시회 “바람”에 함께했던 최성호 작가에 대한 이야기다.
계절의 여왕 5월입니다. 새로운 시작과 희망의 상징인 봄을 맞은 게 엊그제인 것 같은데 계절의 여왕인 5월이 벌써 찾아오니, 이 계절이 주는 시적이고 감미로운 향기에 감성이 더욱 충만해집니다.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하는 일에 있어서 감성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티스트들에게 영감과 감성을 줄 수 있는 5월이 저는 좋습니다. 감성이라는 것은 많은 작가들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탄생되는데 오늘 최성호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며 지성과 감성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한국에서 홍익대학을 졸업하고 자연을 소재로 추상작품을 해왔던 최성호 설치작가는 81년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미술학교인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에 유학을 오면서 뉴욕에서 인정받는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83년 어느 날 브롱스 보태니컬 가든에서 잘려 나가 밑동만 남은 나무의 나이테를 보게 되었는데, 이날 이후 탄생된 작품들이 나무의 나이테를 미니멀한 추상으로 표현한 작업들입니다
Chois Market, 1993 Morning Calm, 1999 Their Korea, 1994
이 시기 최성호 작가의 주요 전시활동 몇 가지를 예로 들자면, 뉴욕 화단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뉴욕 퀸스 아트 뮤지엄에서 개최된 전시 “Across The Pacific(1993)”, 그리고 이를 계기로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개최하여 2년간 미국 순회전시를 하며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데 기여한 전시 “Asia/America: Identities in Contemporary Asian American Art” 그리고 1999년 시애틀 샌드포인트구 해군 비행기지에서 했던 야외 설치작품 전시입니다. 야외 설치에서 보여준 “Morning Calm(1999)” 작품은 둥근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 연못을 만들어 잔디로 덮인 한반도 모형을 38선에서 둘로 나누어 물위를 떠다니게 하는 작품으로 절대 하나로 될 수 없는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을 표현한 설치작품입니다.
My America, 1996 American Pie, 1996 Quiltroad, detail, 2004
이 시기에는 뉴욕시 문화청 산하 단체를 통해 공공 설치 미술작품 벽화 설치를 의뢰 받아 제작한 두 작품이 뉴욕시 24학군 소속 퀸스 엘머스트 소재 중학교 IS-5에 1996년 영구 설치되었습니다. 새로 지어지는 중학교의 강당 뒷면 벽에는 미국 성조기를 배경으로 24개의 다른 언어들로 발간된 일간 신문들을 조합하여 퍼즐모양으로 구성된 미국 지도를 벽화로 제작한 “My America(1996)” 그리고 1층 홀 천장에는 미국 이민자들을 상징하여 48개의 다른 언어들로 된 신문을 조합하여 파이 형태로 제작한 “American Pie(1996)” 작품이 각각 설치되었습니다. 이밖에도 세계 각 나라의 고유 문양을 퀼트 조각처럼 그려 넣어 다문화가 어우러진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Quiltroad‘ 작업이 2004년 시애틀 미연방 법정에 영구 설치되었습니다.
Korean Roulette, 1992 American Dream, 1993
Centrifugal, 1999 Williamsburg Expulsion, 2005
이 시기에 작품들로는 이민자로 청과상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생활 루틴을 표현한 “Korean Roulette(1992)”, 처음으로 복권종이를 사용하여 아메리칸 드림의 허실적인 생활상을 표현한 93년 작 “American Dream(1993)”이 있고, 이 작품들 이후 한동안 복권종이를 사용한 작업은 쉬었다가 2005년부터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미국 내 인종차별의 한 예로 손가락 방향 표시에 의해 나뉘는 유색인종을 위한 방향 표시를 풍자한 “Centrifugal(1999)”,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나듯 도시계획에 의해 나고 자란 타운을 쫓겨나는 흑인들을 풍자한 작품 “Williamsburg Expulsion(2005)” 등이 있습니다
Golden Mind, 2005 Public Domain, 2006 Breeze, 2006
한국인이라는 본인의 바탕과 동양문화의 핵심을 찾으려는 노력과 맥락에서 최 작가는 문자가 갖는 의미와 글자체의 미학적 요소 그리고 인간 내면과 우주의 신비의 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자신의 근원인 동시에 세상의 중심이 마음이라는 생각으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心(마음 심)자를 새겨 넣은 ‘마음’ 작업들을 선보입니다,
복권종이를 사용한 작업으로 멕시코 티후아나 문화센터에서 열린 국제 비엔날레 ES 2008에 참여 전시했던 작품이 있는데, 바로 “Crossing 2008”이라는 작품입니다. 천여 장의 복권종이를 붙인 가로 2미터, 길이 5미터의 작업으로 검정색과 붉은색의 Sharpie 마커로 앞면에는 멕시코 아즈텍 문명에 관한 상징적 이미지들을, 뒷면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시기와 관련한 이미지들을 멕시코 전통 텍스타일 요소를 사용하여 천의 양면에 Folk Art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멕시코가 스페인 지배를 거쳐서 시민들이 이웃나라인 미국의 국경을 불법으로 건너 입국을 하는 등 필연적으로 얽히게 되는 현실을 문화적 상징의 조합들을 통해 나타내고 있습니다.
Bu Gwi Young Hwa, 2005 Gum Eui Hwan Hyang, 2005 Bok, 2006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들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을 주로 이야기하지만 이민자들의 행복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권 작업 시리즈는 우리 이민자들이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를 드러낸 작품들입니다. ‘로또‘ 시리즈는 복권종이를 캔버스에 붙인 후 복권종이 위의 동그라미들을 이용하여 ‘복’, ‘금의환향’, ‘부귀영화’ 등의 글자를 표현했는데, 물질적인 것과 더불어 정체성과 혼동 그리고 문화적 충돌 속에서 그들의 꿈이 사라져버리는 것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최 작가는 이처럼 우리들의 문화 근원인 한자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복권을 이용한 작업으로 이민자들의 열망과 추억을 이야기합니다.
Dreamscape, 2009 Forever Young, 2011 Repose, 2015
로또 작업 시리즈들은 후에 회화적인 요소를 더하여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마커를 이용하여 그린 “Dreamscape” 그리고 로또 시리즈 작업의 최고의 정점을 찍은 작품으로 불로장생의 10장생을 담은 작품 “Forever Young(2011)”, “Repose(2015)” 등의 대작을 탄생시킵니다. 이 작업들은 인간의 욕망 중 하나인 불로장생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작업들인데, 사고로 아들을 잃은 2011년 이후 작품들로 최 작가의 아들을 향한 간절함이 담긴 작업입니다.
Time Travel, 2005 Detail, Time Travel Transfiguration, 2007
86년을 마지막으로 마감 했던 나이테 작업은 20년 후 2005년부터 동그란 나무판 위에 여러 혼합 재료를 사용하여 나이테를 표현한 작업으로 발전되는데 “Time Travel” 작품은 각기 다른 나무 3조각을 하나의 원으로 만들어 그 위에 나이테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Counting up, 2010- Rhythm 2001
“Counting up(2010-)” 작품은 2010년 8월 시작하여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평생 프로젝트입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최성호 작가 본인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 변화해 가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입니다. “Rhythm(2001)” 작품은 그간 최 작가가 수많은 갤러리, 뮤지엄 그리고 공공미술 지원의 합격 여부에 관하여 받은 60통의 거절 통지 편지를 모아 놓은 것으로, 그의 작가로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를 대변하는 작품입니다. 편지 위에 써진 글들을 라인별로 각기 다른 색들로 칠한 후 옆으로 눕혀 한판에 붙인 작업으로 색색의 선들이 그래프가 되어 리듬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Sham, 2013 Koryo Crock, 2014 LW-1, 2014 LW-11, 2015 LW-SU, 2015 LW-3, 2014
Genusham 시리즈 작품들은 우리들이 세상을 보는 태도- 가짜가 진짜인 척하는 것을 풍자한 작업입니다. 종이 위에 그린 유골단지나 도자기 위에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명품의 로고나 가짜 국회 로고를 그려 넣은 작품으로 최근 작품들이지요. 죽음 앞에 덧없는 부와 명예, 진짜인 척하는 가짜 명품 그리고 그것을 숨기고 진짜가 된 듯 떵떵거리는 허세들이 덧없음을 시사합니다.
Aeon 2018, air dry model Aeon 2019, Stone Sculpture
뉴저지 Ridgefield Park 최초의 공공미술 야외 돌 조각품 “Aeon”이 2019년 맥고완팍의 커뮤니티 가든 안에 세워졌습니다. 이 돌조각에는 10가지 장생불사의 심볼들이 새겨져 있는데, 깨끗한 환경에서 장수할 수 있다는 환경 보호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최성호 작가의 수상경력을 보면 1995년 폴록 크라스너 재단 그랜트, 1996년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 록펠러 재단, 앤디워홀 재단이 공동 후원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 그랜트 수상, 2005년 알 재단 작가상 수상, 2019년 뉴저지 주정부가 수여하는 아티스트 펠로우십 등이 있습니다. 또한, Encyclopedia of Asian American Artists(Greenwood Press, 2007) 및 Public Art for Public Schools(Mona celli Press, 2009) 그리고 City Art(Merrell, 2005) 등에 수록이 되어 있는 이민 1세대 한인 작가입니다.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 작가의 작품세계를 읽고 나니 느낌이 어떤지요? 한국인으로서 이렇게 훌륭한 한인 작가들이 많다는 것에 놀랍고, 우리의 작가들이 자랑스럽지 않은가요?
우리 한인들이 이 작가들을 나서서 지켜주고 지원을 해주어 한국 작가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한국의 문화 예술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흔히들 중국을 보고 제국주의라 합니다. 중국 작가들이 미국 내에서 크게 성공하여 이름을 알리고, 그들의 작품이 잘 팔리고, 미국인들이 그들의 작품을 좋아하고 찾는 이유는 바로 중국인들이 미국 내 중국 작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한국 사람들은 외국 화가들의 작품을 선호하지요. 물론 개개인들의 기호도 있겠지만, 이렇게 훌륭한 한인 작가들의 위상에 우리들이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그 일을 누가 해줄까요? 미국인들이? 일본인 아니면 중국인들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해야 하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한류라고 하지요? K-pop이나 한국 드라마가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처럼 우리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들도 한류의 물결을 탈 수 있도록 우리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작가와 작품에 더 큰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관람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우리의 훌륭한 작가들이 세계를 향한 날개가 꺾이지 않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이들이 세계에 알리는 것은 문화와 예술 그리고 나아가서는 우리의 국력입니다.
다음 편에는 시보다 더 시적인 김영길 작가의 작품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겠습니다.

Curator 고수정
예원학교, 서울예고, 맨해튼 음대 대학원에서 피아노 전공 후 연주자의 길을 걸었으나, 미술에 매료되어 뒤늦게 탈리아 브라호플러스 박사(뉴욕 텐리 갤러리 전시 디렉터, 미술사 교수, 미술 평론가 그리고 국제 큐레이터인)의 인턴으로 큐레이터의 길을 시작했다. 이후 탈리아 박사의 지지로 2009년 인천 여성 비엔날레와 2011년 소피아 국제 종이아트 비엔날레 기획에 참여하였고 텐리 갤러리, 첼시의 엘가 윔머 갤러리, 유럽의 뮤지엄 등에 한인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했다. 2015년 첼시에 갤러리를 오픈하여 한인 작가들을 뉴욕에 알리는 일을 해왔다. 2018년부터 뉴저지 한인동포회관의 갤러리 디렉터로서 음악과 미술을 함께 소개해 왔으나, 올해부터는 리틀 페리에 위치한 한인 비영리기관인 패밀리터치에서 한인사회에 좋은 음악과 전시를 소개하기 위해 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