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은미 변호사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 작정하고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은 전에 내가 쓴 작품과는 적지 않게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중략)…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올 소설이 어떤 것이 될지 기다리는 그것이 낙…(중략)…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한계를 끌어안은 한 사람의 작가로서, 

모순투성이의 불분명한 인생의 길을 더듬어 가면서 

그래도 아직 그러한 마음을 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중략)…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만약 매일 달리는 것이 그 같은 성취를 조금이라도 보조해 주었다고 한다면, 

나는 달리는 것에 깊이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본문 126~127쪽)

2022년 10월 9일, 내 인생 최초의 10km 마라톤을 달렸다. 그전까진,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표현은 진부하다 못해 촌스러운, 공감할 수 없는 표현이었다. 그 첫 마라톤 이후, 왜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 지를 더없이 공감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톤을 중심으로 그의 문학과 삶에 대해 털어놓은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이란 회고록을 읽다 보면, 나의 공감은 확신에 가까워진다. 구닥다리같이 여겨졌던 “인생이라는 마라톤”은 정말 완벽한 메타포라는 확신. 1982년 가을 이후로 꾸준히 달려온 하루키가 길 위에서 육체적인 효율과 한계, 그것을 끌어내기 위한 건강한 인지와 자기 확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와 내부의 균형들을 끊임없이 깨뜨리고 재정립하며 골인 지점에 다다르는 것은 인생을 살아내는 우리가 모두 묻고 답하며 각자의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달려내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리라.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결과적이긴 하지만, 자진해서 고립과 단절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중략)…그러나 그와 같은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은 병에서 

새어 나온 산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녹여버린다…(중략)…

그래서 말인데, 나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까지 몰아감으로써,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중략)…누군가로부터 까닭없이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나는 언제나 

여느 때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만큼 자신을 육체적으로 소모시킨다. 그리고 나 자신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가장 밑바닥 부분에서 몸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긴 거리를 달린 만큼,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의 육체를 아주 근소하게나마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 

화가 나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분풀이를 하면 된다. 

분한 일을 당하면 그만큼 자기 자신을 단련하면 된다.

(본문 40~41)

부모님의 건강과 안정이 불가피하게 내 삶에 큰 변화를 만들었고, 그것은 매우 갑작스러웠다. 그렇게 두 분과 함께 생활한 지 1년쯤 되던 날, 나는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부모님의 잠자리를 확인하고 집을 나서면 밤 9시쯤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리고 나면, 무엇인가 나를 무겁게 억누르던 것들이 땀과 함께 사라지면서 놀라운 상쾌함이 찾아온다. 정말 좋았다. 그렇게 늦은 밤 달리기가 며칠째 계속되던 날, 엄마가 가만히 나를 보신다. 한참을 찬찬히 살피시더니 “너, 참 이쁘다” 하신다. 갑작스러운 “부모님과의 동거”로 찾아온 어려움들이 해소되지 못해 계속 온몸과 얼굴이 긴장되어 있었나보다. 그것을 달리면서 풀어내니, 엄마 눈에 내 얼굴이 예뻐 보였을 것이리라. 그때부터 나는 계속 달린다. 마라톤 대회를 나가기도 한다. 거동이 불편하신 엄마 아빠도 나의 달리기에 기운을 받으신 모양인지, 대회 날이면 두 분 모두 신나하신다. 엄마 아빠에게 선물한 마라톤 메달만도 벌써 네 개다.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엄마가 나의 메달 숫자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달리기는 이미 내게 의미를 다한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저녁, 일상의 한계 속에 다다른 내가, 달리기로 내 몸을 움직여 육체적 소모를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강인함과 아름다움과(엄마가 이쁘다고 하니) 즐거움을 얻게 된 것이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본문 128쪽)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항상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본문 35~36쪽)

대학가고, 졸업하고, 결혼하고, 가정 꾸리고, 직장 갖고, 직장 다니고, 직장 또 다니고…직장을 계속 다니다…그러다 문득 부모님이 아프시고, 직장 다니는 것도, 가정을 전처럼 꾸려가는 것도 한계처럼 느껴질 때, 난 달리기 시작했다. 하루키가 달리는 길 위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던졌던 질문과 찾았던 대답들과 비슷한 것들을 나 또한 묻고 답을 얻고 있다. 달리는 동안 확보된 침묵의 시간은 내가 나와 만나는 시간이다. 규칙적인 숨소리에 내가 한계라 느꼈던 버거움과 숨 가쁨을 조금씩 그러나 모조리 덜어낸다. 놀랍도록 행복한 일이다. 하루키는 “자, 모두 함께 매일 달리기를 해서 건강해집시다”와 같은 주장을 떠벌리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당신에게 적.극.적.으로 달리기를 권해 볼 생각이다.  

달린다는 것은…(중략)…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 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본문 27 쪽)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