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에 담긴 그녀의 통찰을 보다

학예사라는 직업이 있다. 영어로는 큐레이터(Curator)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학예사라는 이름의 지난함과 역할의 무게를 생각할 때 단순히 전시를 소개하고 안내하는 정도의 이해로는 충분치 않아보인다. 학예사란 말 그대로 예술(藝)을 공부하는( 學) 사람이며, 미술사적, 역사적 지식의 이해를 배경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예술작품을 주제와 의도에 맞게 디자인 및 재배치하며 큐레이션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는 전시물이나 미술작품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가 우선되어야 하는 만큼 다방면으로 쉴틈없이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 방문길에 삼청동에 위치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미옥 박사를 만났다. 2015년 ‘밥상지교’라는 전시 디자인으로 미국, 일본, 독일 등 해외 3대 디자인 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녀는 현재 박물관 전시 디자인 및 큐레이팅은 물론 집필과 강의활동으로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사람이다. 토요일 오후, 조금은 한산한 전시관에서 그녀와의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해박하고 유쾌하며, 진중하면서도 재치있는 그녀와의 대화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뻔한 시선’으로 드나드는 필자의 눈을 더 깊고, 더 넓게 열어주었다.

인터뷰, 글 최가비 사진 최미옥 학예사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본인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저는 민속박물관 전시디자인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는 최미옥입니다. 이 곳 국립민속박물관은 아무래도 역사적 가치, 민속학적 의미를 담고있는 유물들이 많다보니 관련 공부를 전공하신 전문가들이 주로 학예사로 계시는데요, 주로 컨텐츠 디자인을 하시는 학예사님들이시고 저는 전시를 위한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을 병행하고 있어요.  

일반 학예사와 디자인 담당 큐레이터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대다수의 이 곳 큐레이터들은 역사학, 민속학, 국문학, 인류학 등을 전공하신 분들이 많으신데, 저는 학부에서는 언어학을 전공했고, 이 후 대학원에서 다지인과 건축학을 공부했습니다. 사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작품들은 전시라는 궁극적인 결과물로 그 가치를 가늠하게 되는데, 전시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컨텐츠만 연구해서는 안되고 보여주는 방법에 대해서 접근을 잘 해야하기 때문에 전시를 디자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거든요. 저는 전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간을 디자인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고 있어요.

공간 큐레이팅에 관심을 갖게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대학교 3학년 때 유럽, 인도, 아프리카 등으로 배낭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러 나라의 뮤지엄들을 많이 보게되었어요. 당시 한국의 박물관과는 너무나 달라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요,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이나 내용물에 충격을 받았다기 보다 전시효과를 이끌어내는 다양한 디자인에 많이 놀랐죠. 그래서 그런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사실 학부와 대학원의 전공이 다르면 취업에 좀 불리하거든요. 통섭차원에서는 유리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한 디자인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디자인도 알고 인문학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구인이라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그렇게 전시를 시작하게 되었고 막상 해보니까 너무 재밌더라구요. 그렇게 10년을 일하다가 박물관까지 인연이 닿아서 들어오게 되었어요.

독일 디자인 어워드 시상식 장 - 밥상지교로 위너상 수상
방송프로그램에서 밥상지교 특별전을 소개

학예사님의 대표적인 전시 작품 좀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희 전시관에서는 3개 정도의 상설전시가 있고 연 중 3-4개 정도의 특별전이 항상 있어요. 특별전은 주제도 신선하고 파격적인데요, 그 중에서도 <청바지>, <쓰레기 X사용설명서>, <밥상지교> 등이 제가 담당했던 전시들이에요. 저는 그 전시들을 “딸”이라 불러요. 전시 오픈하는 날 기분이 애지중지 키운 딸을 출가시키는 기분이어서요. 모든 전시가 자식이고 기억에 남지만, 그 중 몇 개를 꼽자면, <선비, 그 이상과 실천(2009)>, <밥상지교(2015)>, <쓰레기X사용설명서(2017)>, <겨울나기(2017)>, <세종시 2005:2015(2017)> 정도가 되겠네요. 

[밥상지교]는 한국과 일본의 식문화 교류를 주제로한 전시인데 그에 맞게 마치 식료품 쇼핑을 하듯 전시를 관람하게 하도록 전시공간을 디자인했어요. 덕분에 박물관을 무겁고 지루하다 생각한 많은 분들이 즐겁게 방문하는 전시가 되었고, 덤으로 박물관같지 않은 전시디자인은 세계 유수의 디자인어워드들에서 수상을 해서 한국적 콘텐츠 전시와 디자인이 세계적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했고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기억을 갖게 한 전시입니다.  

[쓰레게X사용설명서]는 프랑스 마르세이유에 있는 MUCEM이라는 뮤지엄과 공동 기획전이었어요. 쓰레기에 대한 인류적 관심을 호소하는 전시인데 우리관의 전시는 최정화 작가의 작업창고에서 빌려온 폐자재로 전시장을 만들었습니다. 전시장 자체가 쓰레기인거죠. 박물관이 사회문제에 대해 어떻게 관람객과 소통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전시로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겨울나기]는 평창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였어요. 강원도의 설원을 연상케하듯 온통 새하얀 전시실에 우리의 근현대 생활물들을 소담히 담아냈는데 그 평범한 물건들이 진주보다 더 곱고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백의 민족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국적 미감과 감성이 담긴 전시라 만들어 두고 저도 늘 우리것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느끼게 했던 전시였죠. 사실 전시는 공간에서 직접 보고 느껴야 하는데 이렇게 말로 설명하자니 보여드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네요.

이 인터뷰를 접하실 독자들이 더 많이 아쉬워하실 것 같은데요,비교적 규모가 작은 전시 한 두가지만이라도 미국에서 오픈할 수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사실 제가 몇년 전에 미국에서 1년 정도 체류한 적이 있는데요, 미국에서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전시 소재가 민속적인 것이고 또 워낙 한류가 대세라 지금이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미주 한인들에게도, 그리고 한류를 좋아하는 많은 외국인들에게도 소개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유물을 해외로 가져가 전시를 한다는 것에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고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가 있어서 기회를 얻기가 쉽지는 않을텐데요, 그런 문제점을 보완하고 방법을 모색해서 꼭 기회를 만들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특별전 밥상지교 전시실 전경

바쁘신 중에도 틈틈히 책을 줄간하셨다지요?  

네, 올 초에 <뮤지엄×여행(2019,아트북스)>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필드에서 실무를 한지 20년차이고 또 전시디자인담당 큐레이터로 박물관에 입사한지도 딱 10년이 되는 해라 책 출간은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학생시절부터 워낙 여행을 좋아했는데 그간 제가 다닌 여행지에서 만난 기억에 남는 뮤지엄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다만 다른 책들과의 차별점은 공간 큐레이터의 관점에서 뮤지엄의 공간 미학적 특징을 발견하고 아름다운 관람 경험에 대해 서술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책소개에도 나오지만 사람들이 뮤지엄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 오래되고 지루한 장소-에서벗어나고, 뮤지엄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과 미래지향적인 영감들을 각자의 관점에서 발견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게 된 책입니다. 사실 뮤지엄을 소재로 인생이란 여행, 그러니까 디자이너이자 큐레이터로 실무를 해오면서 느꼈던 삶의 태도나 방식에 대한 이야기기도 담고있어요. 디자인의 본질은 심미적 창조에 앞서 기존 질서의 발견과 이해이고 디자인을 하고 전시를 만드는 궁극적 목적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제 책이 뮤지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 볼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학예사님의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미주 한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그동안 전시를 만드는 일을 해오면서 멋지고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저 또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이런 경험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방면으로 노력을 더해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아이를 낳고 성장을 지켜보는 엄청난 경험을 해봤다는 것인데요, 저는 특별히 어린이 및 교육과 관련된 일에 늘 관심을 가져왔고,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도 해외거주 한국인 2-3세들을 위한 우리 문화콘텐츠의 순회전을 개발해보는 거에요. 뉴욕에 잠시 체류할 때 한국학교 담당자 및 동포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필요성을 절감하기도 했고 해외여행이나 출장 중 한류의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느끼기도 했거든요 . 여건 상 쉽지 않은 일임을 알지만 체 게바라가 그랬다지요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고! <맘앤아이>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반갑고 감사합니다. 타국에서 생활하시는 모든분들의 가정에 행복과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리며 한국에 오시게 된다면 국립민속박물관도 기억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유물 디스플레이 작업 중
핀란드 헬싱키 세계박물관협회 건축 전시분과 컨퍼런스 발표모습
사랑하는 아들과 전시보러 가는 길
특별전 쓰레기X사용설명서 전시담당자들과 함께
이화여대에서 전시디자인 특강
특별전 겨울나기 전시실 전경

최미옥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건축학 박사, 대한전시디자인학회(KOSES) 부회장. 

저서

– 100 DESIGNSERS(2010 안그라픽스)

– 길을걷다 마주치는 유럽뮤지엄

(2016 공저/ 에이앤뉴스)

– 뮤지엄X여행 (2019/ 아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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