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거펠트 뉴욕 회고전

글 Windy Lee 에디터

 

올해 패션 트렌드를 휩쓸고 있는 가죽과 데님 의상들을 보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흰 꽁지 머리, 검은 선글라스, 하이 칼라, 가죽 재킷, 손가락 없는 장갑, 스키니 진으로 연상되는 천재 아티스트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다. 2019년에 향년 85세로 작고한 그는 패션계의 살아있는 신화로 군림했으며, 패션과 예술 분야에서 가장 매혹적이고도 다재다능한 아티스트이자 하이 패션의 아이콘으로 손꼽혔던 인물이다. 패션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영화 디렉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 등 믿기 힘든 다양한 페르소나만큼이나 탁월한 디자인과 뜨거운 열정으로 독창적인 결과물들을 많이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금도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라커펠트를 기리는 회고전이 드디어 KARL LAGERFELD: A Line of Beauty라는 타이틀로 5월 5일부터 7월 16일까지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는 한 인물이 패션이 되고, 예술이 되어가는 과정과 그렇게 전설의 아이콘이 된 그의 무한한 상상력과 새로움에 대한 열정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패션은 ‘입는다’라는 실용적 측면이 강하게 전제되어 있어 예술로 인식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패션 디자이너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아름답게 표현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소재와 뛰어난 기술이 결합해 이룬 결과물은 ‘입는 이’와 ‘보는 이’ 모두에게 감동이란 경험을 선사하곤 한다. 이러한 가치들로 인해 이제 패션을 예술의 한 분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런 관점에서 칼 라거펠트의 컬렉션도 뛰어난 예술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디자인은 창의적이면서도 섬세하며, 독창적 아이디어를 전통적 기술과 조합한 그의 컬렉션은 특별하면서도 감동적이다. 또한, 패션에서 한발 더 나아가 패션쇼 자체를 하나의 예술 무대로 승화시켰으며, 패션을 내러티브로 영화를 만드는 시도를 지속함으로써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허물었다. 

경계를 허무는 그의 시도는 비단 장르 사이에 머물지 않았다. 라거펠트가 파투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된 지 몇 년 되지 않아 그는 미술사 공부를 위해 홀연히 로마로 떠났었다. 유년 시절에도 “학교보다 쿤스트할레 박물관에서 더 많은 걸 배운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항상 과거의 것에서 영감을 얻곤 했다. 이러한 영감을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 또한 지속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시도들은 패션 디자인 역사의 새로운 판도를 끌어내곤 했다. 특히 그가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는 동안 샤넬의 전통적 디자인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 냈다. 일례로 샤넬의 전통인 트위드 원단을 사용하면서도 더욱 가벼운 소재로 변형시켜 새로운 룩을 선보이는가 하면, 블랙과 화이트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강렬한 컬러와 패턴을 더해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또한 샤넬의 아이콘인 트위드 슈트를 현대적으로 변형해 다양한 스타일로 재해석했으며, 새로운 액세서리와 주얼리도 제작하였다. 그는 이러한 시도를 통해 샤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80년대에 그가 선보인 샤넬 컬렉션마다 글로벌 히트를 쳤으며, 이에 따라 전 세계에 40여 개의 매장을 새로 오픈한 것이 그 반증이다. 

 

독일 태생의 칼 라거펠트는 20세기 패션계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이자 특유의 스케치로도 유명하다. 그의 스케치에 주목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이번 전시는 그가 파리에서 활동을 시작한 1950년대부터 마지막 컬렉션을 선보인 2019년까지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150여 점의 작품을 현존하는 해당 작품 스케치와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그의 디자인에 영감을 준 예술 작품도 해당 의상과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스케치는 그에게 있어 주요한 창의적 표현 방식이자 소통 방식이었다. 그의 스케치에 나타난 유려한 선들은 발망, 파투, 끌로에, 디오르, 샤넬, 펜디,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칼 라커펠트를 위한 디자인으로 각각 통합되어 패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다양한 작품을 수없이 탄생시켰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미학적이고도 개념적 주제인 선으로 표현된 라거펠트만의 스타일 어휘에 초점을 둔 독특하고도 복잡한 창작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그의 패션 스타일이 수석 재봉사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진화하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이 창의적인 협업은 프랑스 영화 감독 로익 프리젠트가 1997년부터 2019년까지 라거펠트를 따라다니며 촬영한 샤넬, 클로에, 펜디, 칼 라거펠트 프리미어 컬렉션 인터뷰 시리즈로도 함께 조망해 볼 수 있도록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라거펠트의 스케치에서 보이는 구불구불한 선과 직선은 상반되면서도 보안적인 힘을 드러낸다. 구불구불한 선은 그의 역사주의, 낭만주의, 장식적 충동을, 직선은 그의 모더니즘, 고전주의, 미니멀리즘 성향을 나타낸다. 이 두 선은 샤넬, 끌로에, 펜디, 칼 라거펠트의 디자인에서 나타난 미학적, 개념적 이중성을 보여주는 9개의 세부 선으로 다시 나뉘어, 여성과 남성, 로맨틱과 밀리터리, 로코코와 클래식, 역사와 미래, 장식과 구조, 표준과 반문화, 수작업과 기계 작업, 꽃과 기하학, 구상과 추상 등 다양한 테마로 표현된다. 이러한 이중성은 라거펠트의 다면적 디자인의 복잡성과 더불어 미술, 영화, 음악, 디자인, 패션, 문학, 철학에 걸친 그의 폭넓은 영향력을 드러낸다. 전통적인 방식의 회고전이 아닌 작품에 대한 주제별 개념적 접근이 돋보이는 이번 전시는 1954년 국제 울마크 상 수상 이후 발망의 디자인 어시스턴트 및 파투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동하며 독특한 스케치 스타일을 발전시킨 칼 라거펠트의 초기 작품부터 그의 유쾌함과 날카로운 위트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 그리고 그의 자화상을 흑백의 유니폼으로 다양하게 표현한 앙상블까지 총 망라되어 전시된다. 

 

특별히 칼 라거펠트의 러브콜을 지속해서 받았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가 이번 전시의 디자인을 맡아 라거펠트가 두 개의 선으로 표현한 창의적인 역동성을 공간 안에 물리적으로 표현하였다고 하여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샤넬과 펜디 그리고 콘데 나스트가 후원으로 나섰다.

 

The Met Fifth Avenue
1000 Fifth Avenue New York, NY 10028 | 212-535-7710

 

Courtesy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 Patrimoine de CHANEL, Paris /

FENDI / CHLOÉ / KARL LAGERFELD

All designs by Karl Lagerfeld (French, born Germany, 1933–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