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 국악 밴드 ‘블랙 스트링(Black String)’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한국의 포크 재즈” “거문고 없이 록 음악이 어떻게 65년을 견뎌왔는지 모르겠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흥분되는 그룹 중 하나.” “강력한 비트 속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언어를 창조하고 장르와 시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존재.”
프랑스 르몽, 영국 가디언을 비롯한 해외 언론들이 크로스오버 국악 밴드 ‘블랙 스트링’에 이 같은 찬사를 보냈다. 거문고 명인 허윤정 서울대 교수를 중심으로 대금 연주자 이아람, 타악 연주자 황민왕, 기타리스트 오정수로 구성되어 2011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블랙 스트링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훨씬 더 유명한 밴드다. 2017년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월드 뮤직 엑스포(WOMEX)에서는 관행을 깨고 개최국 대신 공식 쇼케이스를 장식했으며 2018년 영국 송라인스 뮤직 어워즈에서는 한국 최초로 아시아 & 퍼시픽 부문을 수상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곡을 연주하는 블랙 스트링은 아시아 그룹 최초로 유럽 최대 재즈 레이블인 독일 ACTMusic에서 1집 [마스크 댄스]와 2집 [카르마]를 발매하며 열정적인 음악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월, 뉴욕 한국 문화원 주최로 뉴욕과 볼티모어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블랙 스트링의 리더 겸 프로듀서 허윤정 거문고 연주자를 맘앤아이가 인터뷰했다.
인터뷰, 글 – 김지원 에디터
- 블랙 스트링의 음악은 전통을 기반으로 하지만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을 줍니다. 블랙 스트링이 추구하는 음악은?
멤버 중 세 명은 국악을 베이스로 하고 한 명은 서양 악기인 기타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 음악을 새롭게 발전시켜 블랙 스트링만의 색깔로 만드는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국악 장르를 가지고 만든다기보다 연주자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과 개성이 투영되어 있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음악이 탄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혹자는 블랙 스트링의 음악을 ‘국악과 재즈의 결합’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던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국악과 재즈를 접목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인식하는 재즈적인 음악을 저희에게서 듣기는 어렵거든요. 저희는 즉흥이 살아있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자유롭고 즉흥적이고 실험적인 면에서 재즈적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이론적으로 재즈적 요소가 있진 않아요. 재즈의 정신, 자유로움, 무한 확장성, 즉흥성 연주 같은 방향성은 녹음할 때도 반영되어 앨범에도 즉흥성이 녹아 있습니다. 물론 라이브에서 더 자유롭게 펼쳐지고요. 이 같은 요소가 재즈와 공통분모라고 생각됩니다. 블랙 스트링의 음악을 정의하자면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음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Q 블랙 스트링 음악의 시작이 뉴욕과도 연관이 있다고 하던데요?
제가 2007~2008년 사이 뉴욕에 와서 6개월간 머물렀는데요. 뉴욕에서 전 세계 모든 음악을 경험할 수 있었고, 다양한 연주자들과 아티스트들을 만나면서 음악관과 경험이 엄청나게 확장됐습니다. 그들의 음악과 연주를 듣고 보면서 해외에서 활동할 때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에 대해 방향성을 잡는 큰 발판이 마련됐던 거죠.
- 지난 9월 9일 열린 뉴욕 공연의 관객 반응은 어땠나요?
이번 뉴욕 공연은 맨해튼 소재 ‘첼시 테이블+스테이지’라는 특별한 공연장에서 열렸습니다. 오픈 한 지 얼마 안 된, 테이블에 앉아 공연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였는데요. 여러 번 공연해 본 뉴욕의 일반적 클럽과는 달리 격식이 갖춰진 곳이라 색다른 의미가 있었고 공연 전 티켓이 모두 솔드 아웃되어 감사했습니다.
특히 예전에 비해 최근 공연을 찾는 관객분들의 연령대가 많이 낮아졌음을 느꼈어요. 젊은 분들이 많이 오셨고요. 이제는 ‘한국 국악이 신기하다, 특이하다’는 호기심에 공연을 보러 오시기보다는 ‘블랙 스트링’의 음악이 좋아서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한국 악기에 대해서도 익숙하진 않지만 특이하게 보지는 않는 추세예요. 관객 비율도 외국인과 한인이 8:2 수준으로 외국인 관객분들이 많이 와주셨습니다.
- 국악의 정체성,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한국의 전통적인 것을 현대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전통적인 내용은 지니고 가고 전달 방식이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용까지 바꿔버리면 정체성은 무의미해지는 거니까요. 결국 방식에 있어 얼마나 세련되고 힙하게 전달하느냐에 대한 감각의 문제라 볼 수 있는데요. 그 감각을 키우려면 결국 우리 전통의 본질을 좀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전통적인 것을 현대적인 것과 콜라보레이션하기 위해서는 기술력과 고민이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어요. 크로스오버라는 기술에 너무 치우치다 보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저희도 전통 음악의 깊이와 예술성을 충분히 공부하고, 잘 알기 때문에 본질적인 곳까지 들어가서 그것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최근 다양한 국악 밴드들의 활동이 눈에 띄는데요. 후배 뮤지션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국악 밴드들은 저마다 다양한 음악들을 하고 있죠. 특히 20대 젊은 국악 뮤지션들의 경향을 보면 악기의 한계에 구애 받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용감하게 하려는 모습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전통 음악을 좀 더 절실하게 했던 저희 세대나 예전에 비해서는 전통 악기에 대한 고민보다 소통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즉, ‘왜 나는 지금 시대에 맞는 음악을 잘하지 못할까, 내 또래 친구들의 다른 음악은 대중과 바로 소통할 수 있는데 국악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소통의 고민을 먼저 하는 경우를 보곤 하는데요. 그런 친구들에게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 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러면 분명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걸로 생각합니다.
- 독일 메이저 레이블인 ACT에서 아시아 그룹 최초로 앨범을 발매해 화제가 됐었는데요. 첫 번째, 두 번째 앨범에서는 어떤 음악을 담고자 하셨나요?
2012년에 결성되어 2016년에 첫 앨범을 냈습니다. 1집 나오기까지 진통이 많았고요. 녹음도 굉장히 여러 번 했어요. 1집은 그동안 공연해 온 결과물을 앨범에 담았고요. 2집은 앨범 자체를 위해 녹음했었습니다. 1집은 한국의 전통적 요소를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구요. 2집은 조금 더 자유로워져서 앨범으로 감상했을 때 음악적 베리에이션이 더 다양하게 들어갔어요. 한국적 색채는 2집이 조금 덜 하지만 보편적 감성은 더 들어가 있고요.
- 3집 발매는 언제쯤 생각하고 계신가요?
3집 발매는 내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내년 초에 녹음을 시작할 생각이고요. 2집과 3집 사이, 지난 2020년 블랙 스트링 라이브 앨범[Jazz at Berlin Philharmonic]도 발매됐습니다. 베를린 필 하모닉과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옴니버스 컴필레이션 앨범입니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 바람과 계획은?
한국 음악이 많이 알려지고 주목 받는 요즘, 블랙 스트링이 개척해온 길이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고요. 한국 전통 음악의 대중화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음악이나 문화를 색다르게 보고 싶은 많은 외국인과 한인 2세 3세의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더욱 도전하고 개척해 나가는 것이 저희에게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이날치’처럼 대중성을 목표로 한 밴드가 있다면, 저희 블랙 스트링은 한 발 더 앞서 국악 밴드의 최전방에서 다양한 길을 만들 수 있는 그런 밴드가 되도록 지속적으로 음악을 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블랙 스트링’ 인터뷰에 도움 주신 뉴욕 한국 문화원 황태현, 한효 실무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