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교의 영국 시골살이 / 겨울편

, 소복이 눈이 쌓인 정원 풍경을 영국생활 만에 처음 보았다. ‘겨울의 이라는 새하얀 눈은 우리 동네에는 쉬이 피지 않는 귀한 꽃이다. 어쩌다 내리는 눈은 어중간한 기온에 비가 되기 일쑤고 그나마 꽁꽁 얼어 우박이 되어 떨어지는 일도 잦다. 그렇기에 쌓인 풍경을 보는 일이 더욱 특별한 경험으로 느껴지는 웨일스-. 이곳에서 태어난 딸아이는 영화나 동화책에서처럼 발이 폭폭 잠기는 눈을 밟아 보고픈 평생(?) 소원을 일곱 되던 해에야 이룰 있었다. 그마저도 커다란 눈사람을 굴리기에는 부족해 작은 토끼로 만족해야 했지만 말이다

▲ 간밤에 내린 눈이 집과 정원을 하얗게 뒤덮었다. 눈이 귀한 영국에서 쉽게 감상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풍경이다.
▲ 딸과 함께 꾸민 빨간 눈 토끼. 겨우내 색이 바랜 솔 바늘과 작은 돌멩이, 빨간 홀리 열매를 콕콕 박아주니 예쁜 눈 토끼가 되었다 .

 해를 있는 시간도 길지 않다. 시가 되도록 모르던 한여름의 태양이 오후 시면 자취를 감춰 버리는 웨일스의 겨울. 아직 떠오른 같지 않은 해가 점심을 먹고 나면 어느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한다. 이렇듯 혹독한 날씨가 잦은 웨일스에 살면서 종종 듣는 말이 있다

There’s no such thing as bad weather, only bad clothes.( 좋은 날씨란 없다, 단지 좋은 복장이 있을 .)”

영국의 유명한 여행작가인 알프레드 웨인라이트(Alfred Wainwright) 남긴 재치 있는 말이다. 어둡고 축축한 날씨에 자칫 무기력해지기 쉬운 겨울이지만 날씨 탓을 하는 대신 따뜻한 옷을 챙겨 입고 밖을 나선다. 계절에만 가능한 즐거움이 도처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낮은 고도로 가까워진 하늘과 기나  겨울의 까만 밤은 한여름의 눈부심에 가려져있던 다른 풍경을 선물한다. 산중턱에 낮게 깔린 보랏빛 구름과 지는 해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석양을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있고, 붉은 노을 위로 드리워진 밤하늘의 달과 별을 일찍 만날 있다.  

공해가 없는 깜깜한 시골 밤하늘은 달과 별을 관측하기에 좋은 놀이터다. 마음이 동하는 날은 모닥불 가에 모여 앉아 장작 타는 소리와 부엉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머쉬멜로우를 잔뜩 올린 따뜻한 코코아에 시린 코를 녹이고, 입김 호호 불며 먹는 군고구마 맛은 여름날 바베큐로는 느낄 없는 꿀맛맑은 , 쏟아질 가까운 별들과 흐린 달무리에 비치는 소슬한 구름, 보름달 뜨는 가로등이 켜진 환하게 밝아지는 정원의 모습은 이른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겨울의 숨은 빛이다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 드는 정원 언덕을 질러가는 밤기차의 불빛도 잎이 무성했던 여름에는 없었던 몽환적 풍경을 연출한다.   

 

▲ 추울 때 안으면 더 따뜻한 반려견 무수리도 포근한 겨울나기의 동지이다.
▲ 일찍 잠자리에 드는 딸아이가 취침 전 밤 풍경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겨울 , 찬 겨울 밤의 별미, 군고구마도 빠질 수 없다 .

결핍 우리의 창의성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비록 외출과 만남이 자제되어 아름다운 도시나 유적지의 야경을 보러 멀리 떠나기는 힘든 상황이지만 겨울 밤을 따스하게 밝혀줄 소중한 빛은 가녀린 촛대 위에도, 노오란 꼬마 전구 속에도 숨어 있다. 어두움이 강하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것들은 비단 풍경에만 그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겨우내 얼어붙은 마음 속에도 혹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면 마음을 열어 빛을 찾아보면 어떨까? 각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은 다를지라도 그렇기에 나에게만 가능한 귀한 풍경이 있다. 미미한 상상 속의 빛이라도 짙은 어둠 속에서는 더욱 밝게 빛나는 법이기에.

해가 짧은 겨울, 피할 없는 밤을 각자의 방법으로 즐기노라면 그토록 기다리던 봄의 햇살이 갑절 기쁨으로 돌아올 모른다. 노란 수선화와 튜울립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날에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모두, 따뜻하고 건강한 겨울 보내시기를!

정소교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자연에서 나는 음식을 먹어야 입덧이 가라앉는 바람에 자연의 소중함을 절감 하고 시골 행을 결심, 200년 전 웨일즈 풍을 그대로 간직해 문화재로 등재된 작은 시골 마을로 들어갔다.

www.youtube.com/c/SOKYO소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