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 그리고 담배 할매

글: 황은미 변호사

 

예로부터 먹을 수 있고 쓰임새가 많은 나무에는 “참”자를 덧붙여 불렀다. 가죽나무에서 참가죽으로 엄나무에서 참응게로 말이다. 봄에만 맛볼 수 있는 참가죽과 참응게가 먹거리로 이용된 역사는 길다. 흙, 물, 공기의 향과 맛을 가득 품은 것이 길고 추운 계절을 지나 기어코 찾아온 봄의 생명력을 닮았다. 봄나물 그득그득 담아 장에 나온 할매들의 휘어진 허리와 느린 손동작이 안타까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봄이 왔기 때문이리라. 가장 좋은 봄나물은 담배 할매가 판다. 친절하지는 않아도 할배랑 깊은 산까지 들어가 최상의 봄나물을 캐온다. 제일 좋은 봄나물 맛볼 생각에 할매의 심통은 충분히 견딜 만하다. 그런데, 할매 나물이 그전 같지 않다. 그러고 보니, 할매가 유난히 야위었다. 지난 겨울은 힘든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할매가 부르는 가격으로 할매 나물을 모두 사 온다. 할배 없이 맞이한 봄이 더 따뜻하길 바라며…

 

 

*제철 나물 자연 밥상 

참가죽: 호불호가 갈리는 향기와 식감을 지녔다. 하지만 분명 자연을 가득 품은 맛이다.  

첫 순은 살살 씻어 생으로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마디가 “똑” 끊어지는 것들은 겉절이를 만들어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맛있다. 조금 더 질겨지면 부드러운 부부만 솎아 내 나물로 무치고 질긴 부분 끄트머리만 모아 전을 부쳐 먹는다. 더 질겨지면 찹쌀풀을 발라 기름에 튀겨 가죽 부각을 만들어 먹는다. 식재료가 순할 때부터 질겨질 때까지 조리법을 달리하여 버릴 것 하나 없이 맛있게 먹는 것이 우리네 음식 문화다.  

 

참응게: 두릅나뭇과에 속하는 엄나무의 새순이다. 쌉싸름한 맛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 단연 봄에만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식재료다. 밑동 붉은빛이 도는 받침을 제거하고 살짝 데친다. 줄기가 부드럽게 휘어지면 맛있게 삶아진 것이다. 남은 응게는 나물을 만들어 먹는다. 듬성듬성 잘라 집 간장, 참기름 넣고 조물조물 무쳐 깨를 뿌려 낸다. 전으로 만들어 먹어도 맛있다. 장아찌로 담아 두고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새순이 자라 서서히 잎이 커지면 맛과 향이 강해진다. 이렇게 강해진 나무 순은 식용으로 쓰지 않는다. 자연이 허락하는 시간 동안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사람 이야기- 남창옹 이단지 담배 할매

할매: 이거 만 원 주라 아니 팔 만원주라.

계화: 할매, 만 원이랬다가 팔 만원이라니요…비싸다. 

할매: 살라면 사고 말라면 말아라. 비싸면 말든가. 

계화: 아니, 근데 이 나물 이름이 뭐였죠?

할매: … 내가 봄에 장설 때마다 니한테 이름 갈켜줬는데, 와 모르노? 내보다 젊은 게! 

계화: 아이고, 나도 모릅니더… 그런데, 와 이리 나물이 안 나왔는교?

할매: … 내 혼자 캐니까 그르치! 아…. 안 살라믄 저리 치워라! 

계화: 그냥 다 주이소. 할매 나물 내가 다 살랍니더. 

 

장날, 할매를 찾는다. 담배 연기 냄새를 따라가면 어김없이 할매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할매 좋은 나물 사 갈까 발걸음이 급하다. 그런데, 할매 나물이 그전 같지 않다. 깊은 산에 들어가 캐 온 나물이 아니다. “아…할배가 지난겨울 돌아가셨구나.” 가격 흥정은 안 하련다. 그냥 달라는 값에 다 산다.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샀으니 봄나물 바구니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봄소식을 전하기에 참 좋다. 모든 생명이 긴 겨울을 지나 봄에 다다르는 것은 아니니 봄엔 봄나물을 꼭 먹자고 당부도 한다.

 

임계화_제철 음식 전문가

봄이 오면 나물을 한껏 담아 “나물 바구니”를 만든다. 두루두루 선물하며 봄 인사를 건넨다. 겨울이 깊어지면 바다에서 해초를 구한다. “해초 바구니”를 만들어 지인들의 겨울나기에 먹거리를 보탠다. 내가 해 먹어보니 맛있었던 방법들을 글로 적어 함께 보낸다. 절기마다 달라지는 식재료에 궁금한 사람들도 달라진다. 세발나물을 참 맛있게 먹던 친구, 호래기를 좋아하시는 어머니. 절기마다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은 비단 식재료만이 아니다. 사람, 그것을 함께 나누고 맛있게 먹었던 사람들, 그 따뜻한 기억이다.

 

 

 

Mom&i 맘앤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