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국악에 현대적 감성을 더하다

이민생활에 해를 더해갈수록 ‘전통’, ‘우리문화’라는 말을 들을 때면 왠지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곤 한다. 필자가 국수주의자라서가 아니라, 한국도 아니고 먼 이국땅에서 우리 것의 맥을 잇기위해 고독한 작업을 이어가는 한국문화예술인들의 척박한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맘앤아이 2월 아티스트 인터뷰 코너에서는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가락을 전하고 가야금의 매력을 알리며 꾸준한 연주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가야금 연주자 신송은씨를 만났다. 2016년 세계 한국 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 한 후, 미국에 체류하며 ‘국악 대사’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그녀는 국악의 전통에 현대적 감성을 더한 따듯한 연주로 친근한 국악 알리기에 늘 애쓰고 있다. 인터뷰 시작무렵 신송은씨는 조선시대 음악지침서인 악학궤범(樂學軌範)의 첫 문장을 들려주었다. 정조임금이 깊이 사랑했다는 이 글귀는 우리 선조들이 말하는 음악의 본질, 그리고 국악의 깊이와 철학을 대변하고있는 문장으로 신송은씨 역시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 귀절이기도 하다.

인터뷰, 글 최가비 에디터   사진  배강수 

“악(樂)이란 하늘에서 나와서 사람에게 붙은 것이요, 허(虛)에서 발하여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여 혈맥을 뛰게하고 정신을 통하게 하는 것이다.”  – 악학궤범 중에서 –

안녕하세요 선생님, 맘앤아이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가야금 연주자 신송은입니다. 가야금을 배우고 연주자로 살아온 지 26년 됐고, 미국에서 활동한지는 5년 정도 됩니다. 외국인들에게 국악을 들려주고 특히 가야금에 대해 기회있을 때 마다 알리는데 늘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서양음악에 비해 국악은 그닥 대중적이지는 않다고 알고있는데, 언제부터 국악(가야금)에 관심을 갖게되었고 연주자로 자리매김하기 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셨는지요?

대중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주 평범한 동기로 가야금을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고 당시 대회도 나가고 그러다보니 제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신 저희엄마가 제게 가야금을 권하셨어요. 제 고향은 전라남도 남해인데요, 저희집에서 시외버스로 한시간 거리에 진주가 있고, 마침 그곳에 가야금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하루는 엄마와 함께 그 분을 찾아갔어요.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 이걸 배울까 말까’ 나름 심각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어요. 처음 가야금을 대한 느낌은 나쁘지 않았었던 것 같아요 10살 어린 나이에 토요일 마다 혼자 버스를 타고 진주까지 나가서 레슨을 받았던걸 보면요. 

그렇게 혼자 레슨을 받고 저녁이 되면 선생님께서 어린 저를 다시 돌려보낼 수가 없어서 하루밤을 재우곤 하셨어요. 그렇게 시작한 가야금을 여지껏 한번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었어요. 중학교 2학년 무렵 서울로 올라가 국악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이 후, 중앙대 학교 국악과에서 가야금을, 또 대학원에서는 한국음악을 전공했는데, 그렇게 가야금과 국악 전반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이어왔어요.

가야금이 사실 한국의 전통악기임에도 불구하고 악기 자체에 대해 제대로 알고있는 분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흔히들 가야금과 거문고를 많이 혼돈하시는데요, 가야금과 거문고는 둘 다 우리나라 악기로 오동나무 몸통에 명주실을 꼬아 만든 현악기라는 공통점이 있고, 대신 가야금은 열두줄, 거문고는 여섯줄이라는 큰 차이점이 있죠. 물론 여러 가지 다른점이 더 있지만 가야금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자면, 가야금은12현이 안족(기러기 발) 위에 걸쳐져있는 형태인데, 줄이 12줄인 이유는 일년이 12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배웠어요. 그리고 판이 둥근 이유는 하늘을 의미하고 바닥이 평평한 것은 땅을 의미하며, 전통가야금 뒤에는 해와 달이 패어져 있는 등 악기 자체에 우주의 조화와 철학적 의미가 담겨있어요. 삼국사기에 따르면 가야시대 가실왕이 혼란한 나라를 음악으로 조화롭게 하기위해 우륵이라는 악사를 통해 가야금을 만들게했는데, 가야가 망하게되자 우륵이 가야금을 안고 신라로 투항을 했다고 해요. 당시 신라에서는 우륵이 적국의 악사인 점을 들어 많은 신하들이 그를 처형할 것을 권했지만 진흥왕이 ‘음악은 죄가 없다’ 라며 우륵에게 세 명의 제자를 붙여 음악을 더욱 발전시켰다고 전해지죠. 그렇게 우리의 전통악기로 이어져 오다가 현대에 들어서면서 줄이 점점 늘어 15현, 18현, 21, 22현, 그러다가 현재 25현까지 개량 발전해서 현재는 25줄 가야금이 가장 많이 대중화되어 있어요.가야금을 연주해오신 지난 26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나 대회. 그리고 활동들 조금 소개해 주시겠어요?

무대가 크든 작든 모든 연주가 다 기억에 남고 다 소중한데요, 2009년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의 한국국민악회 연주가 있었는데, 당시 중앙대 교수로 계시던 심유주 작곡가님의 현대음악 ‘시간의 상실’이라는 곡을 거문고 연주자 박은혜씨와 함께 연주했는데, 사실 쉽지않은 곡이었지만 연주하면서 희열과 보람을 느겼던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이고요, 그리고 2016년 세계 한국국악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가 가장 기뻤어요. 원래는 미국에서 국악을 배운 아마츄어들이 참여하던 컴페티션이었는데, 2년 전부터 명인부가 생겨서 전문인들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당시 세계 각지 국악인들이 참여했는데 거기서 대상을 받았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을 꼽자면, 2013년 하바드 대학을 방문했던 적이 있어요. 그 학교 한국학생들 중에 한국입양아를 위해 봉사하는 단체가 있는데, 그 단체의 초청으로 하버드 대학을 방문해 입양아들 대상으로 가야금에 대해서 가르치고 직접 연주를 한 적이 있었어요. 가야금을 처음 본 한국입양아들이 너무 신기해하고 좋아했는데, 가야금이라는 한국의 악기로 자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나누었다는 점에서 보람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또 Tuffs 대학에서 한국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님 클래스에 초대되어 학생들이 작곡한 음악을 가야금으로 연주하고 피아노, 바이올린과 협주를 한 적이 있는데, 외국학생들에게 가야금이 어떤 악기인지, 또 한국음악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기에 무척 의미있는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한국음악을 외국인 관객들 앞에서 연주할 때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 같아요.

한국에서 연주할 때와는 좀 다르죠. 관객들의 반응도 다양하구요. 특히 유럽에서 연주할 때와 미국 관객들 간의 큰 차이점이 있는데, 유럽에서는 정통국악, 일테면 가야금 산조와 같은 정통국악을 연주해줘야 관객들이 좋아해요. 사실 가야금 산조는 비전공자가 감상하기 쉬운 음악은 아닌데, 그래도 유럽인들은 본질적인 국악을 좋아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정통국악 보다는 자신들의 귀에 익은 음악을 들려줘야 좋아하더라구요. 그래도 그들이 이미 알고있는 음악을 가야금 가락으로 듣고 그렇게라도 우리악기를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한국에는 예술강사라는 직업이 있어서 전문 국악인들이 초등학교에서 부터국악을 가르치고 있고, 또 여러 음악패스티벌에서도 국악을 접할 기회가 많은데, 미국에서 국악의 맥을 이어간다는 것이 정말 쉽지않거든요. 굳이 정통국악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디든 가서 한국음악을전하고 가야금을 알리려고 늘 애쓰고 있어요.

잘은 모르지만 국악연주인들은 사이가 무척 각별하고,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민속음악이고 전통을 중시하는 마음가짐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저 역시 오랜시간 가야금을 배워오면서 여러 선생님을 존경해왔어요. 가야금의 음악적 기교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주신 스승님의 삶 자체가 다 배움이었죠. 제가 일찍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지만 그래도 이렇게 바르게 잘 자랄수 있었던 이유도 다 부모님과 같은 스승님들이 계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제게 처음으로 가야금을 가르쳐 주셨던 박정화선생님, 이연경선생님. 그리고 딸처럼 여겨주시는 하가영선생님, 대학교 때 김계옥 선생님, 또 국악에 대한 이론과 지식, 또 철학적 깊이까지 가르쳐주셨던 김수현선생님 까지… 돌이켜보니 저는 스승님 복진짜 많았던 것 같아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2016년 세계 한국 국악 경연대회 대상수상
세종문화회관 한국 국민악회 연주-신송은씨(왼쪽)
2016년 세계 한국 국악 경연대회 대상수상

혹시 뉴욕, 뉴저지 지역에 한인어린이들이 한국문화예술인들에게 직접 전통예술을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나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나요?

아쉽게도 아직까지 그 정도로 갖춰져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그나마 한국무용을 하시는 선생님들께서 지역 한국학교를 통해 맥을 이어가시기는 한데, 한국음악이나 악기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오는 형편이에요. 한국정부의 지원이 가능하다면 미국 내에 있는 여러 한국학교에서라도 국악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죠. 그나마 재외 국악인 선배님들이 척박한 현실 가운데서도 전통을 전수할 수 있도록 터를 다져놓으셔서 저같이 비교적 젊은 국악인들은 미국에 오자마자 연주할 기회를 많이 얻는데, 아직 교육을 할 만한 시스템은 갖춰져있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기관 건립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우선은 기회가 닿는대로 국악을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인들은 무엇보다 가족들의 이해와 지원이 무척 중요한데, 가사와 병행하시기는 어렵지 않은가요?

저는 현재 남편과 둘이 살고 있어서 연주를 하거나 활동하기에 어려움은 없는 편이에요. 특히 저희 남편이 평소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연주가 있을 때마다 제 매니저처럼 뒷바라지를 잘해줘서 늘 고맙고 감사하죠. 그리고 세상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엄마도 저의 열혈지지자시죠. 제가 가야금 연주자로 살게해 주신 고마운 분이신데요, 당신 삶도 그닥 안락하지 않으신데 현재 아이코리아라는 봉사단체 남해 지부 회장을 맡고 계시면서 지역 사회의 어려운 분들을 위해 봉사하고 계세요. 틈틈이 제가 한국에 갈 때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저의 재능을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시죠. 자신은 늘 아끼고 절약하시면서도 자식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하셨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들에게 항상 베푸시는 엄마, 그 엄마의 딸이어서 저는 너무 감사해요. 저도 가야금으로 평생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야금 연주자로서의 조금은 특별한 삶, 또 재밌는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들을 계획하시는지요? 

우선 다음주에 뉴욕의 선교단체 행사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연중 크고작은 연주행사들이 꾸준히 있고요, 무엇보다 몇년 후면 제가 가야금 연주자로 살아온 지 30년이 되요. 그에 맞춰30주년 기념 싱글앨범을 발표하려고 구상하고 있어요. 그동안 여러 앨범작업에 참여했지만 제 개인앨범은 처음이라 여러 가지로 고심하고 있어요. 그간의 다양한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들을 수 있는 친근한 국악, 그리고 전통에 현대적 감성을 더해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듯함을 전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들도록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신송은 국악인(가야금 연주자)

서울국악고등학교, 중앙대학교 국악관현악과, 

대학원 한국음악 전공, 

2016년 세계 한국 국악경연대회 명인부 대상 수상, 

전문국악 연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