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다섯 아들을 키워낸 그녀의 이야기
귀공자 같은 외모, 감미로운 목소리, 데뷔와 함께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가수 팀. 부잣집 외동 아들, ‘엄친아’ 이미지의 그는 사실, 다섯 아들 중 넷째이며 부모님은 목사님이다. 팀의 어머니인 이은성 목사는 상담학 박사이자 시인, 강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팔방미인으로 2007년 「여섯 남자와 산 이야기-하나님이 키우셨어요」를 발간했다. 이 책에는 전 재산 290불로 이민을 와 다섯 아들을 목사, 사업가, 작곡가, 가수, 모델로 번듯하게 키워낸 이야기가 담겼다. 젊은 시절 영화배우로 캐스팅 될 정도로 뛰어난 외모를 자랑했던 이은성 목사는 60년대 최고의 미녀 배우 ‘문희’와 닮았다. 한국의 유명 자동차 수입 회사에서 인정 받는 커리어 우먼이었던 그녀는 왜 미국에 이민 생활을 시작했을까? 지난 9월 뉴저지를 찾은 이은성 목사를 맘앤아이가 스튜디오에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인터뷰, 글 – 김지원 에디터
Q 결혼 직후 미국으로 이민 오셔서 가수 팀을 포함해 다섯 아들을 키우셨어요. 미국 이민 생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47년 전, 목사인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됐어요. 당시 첫째를 키우던 중이었는데 아이를 데려가면 남편 공부에 지장을 줄까 봐 첫째를 친정에 맡기고 미국으로 뒤따라왔습니다. 남편은 졸업 후 개척 교회에서 일하게 됐는데요. 당시만 해도 영어를 못해 불이익을 받는 한인 이민자가 너무 많았어요. 그들의 어려움을 도와주면서 미국에 남게 됐습니다. 개척교회이다 보니 저희도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세탁소에서 픽업 딜리버리를 하기도 했어요. 그때 개척한 교회가 벌써 44년이 됐는데, 아직도 필라델피아를 떠나지 않고 ‘큰믿음 제일 교회’에서 남편인 황준석 목사와 함께 목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개척교회 목회 활동을 하면서 아들 다섯을 낳게 된 스토리가 궁금한데요.
오랜만에 만난 제 친구가 저를 만나고 세 가지에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첫째는 제가 고생을 바가지로 하고, 둘째는 아들 다섯을 낳고, 마지막으로는 목사의 아내가 됐다는 것이 충격이었다고요(웃음).
저희 부부가 처음 미국 유학을 결심했을 때는 3년 후 귀국할 계획이어서 첫째를 친정에 맡겼는데, 미국 온 지 4년 만에 큰아들을 데리고 미국에 들어올 수 있었어요. 아들 둘을 낳고는 친정 어머니가 딸이 하나 있으면 좋다고 하셔서 임신했지만, 셋째도 아들이었죠. 2년 뒤 넷째 팀을 임신했는데, 당시 보험도 없고 살림도 넉넉지 않아 힘든 시기였어요. 임신이 반갑지만은 않았죠. 사모가 거룩하지 않고 애만 만드는 거 같아 보이는 것도 싫었고요. 아마 한국에 있었으면 아이를 지우러 병원에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아이를 지우려 하는 건 하나님 주권에 대한 도전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팀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팀이 중학생일 때 신앙적으로 예쁘게 성장했는데, 그때 제가 ‘너를 가졌을 때 사실 기쁘지만은 않았다’고 했더니 충격을 받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이 엄마를 회계시키면서까지 너를 선물로 주셨다. 그러니 너는 아주 특별한 아이고 특별한 인생이다.’라고 이야기해 줬어요. 용기를 주고 싶었거든요. 팀의 생일이 12월 23일이에요. 저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죠. 목사 사모들은 원래 크리스마스 시즌이 가장 바쁜데 저는 팀 덕분에 81년도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었어요. 그리고 폐경이 왔는데, 7살 터울의 막내를 가지게 됐어요. 막내에게도 ‘너는 엄마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으로 나오게 된 거다. 너는 언젠가 특별한 일이 있을 거다’라는 얘기를 해줬어요.
목사, 사업가, 작곡가, 가수, 모델 겸 사업가로 다섯 아들이 모두 자랑스럽게 성장해 많은 분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자녀 양육과 교육에 있어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
사실 개척교회를 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다 보니 헌금도 별로 없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어요. 아프거나 다친 사람들을 위해 같이 병원에 가드리고, 통역도 해드려야 했고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 나갔죠. 정작 우리 아이들을 양육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제 손으로 아이들을 챙길 상황도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제겐 자녀 교육의 원칙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약속을 지키는 엄마예요. 아이들이 잊어버려도 엄마는 꼭 약속을 지킨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두 번째로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자주 해줬어요. 아이들의 작은 칭찬거리들을 잘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얘기해 주고 선물을 줬어요. 그리고 당사자인 아들에게 선물을 주고 나면 다른 아이들에게도 선물을 같이 사줬어요. 다른 형제들에게 ‘너의 형제가 이러 이러한 일을 잘해서 너도 선물을 받는 거야. 복 받는 사람 옆에 있으면 복을 받게 된단다’라고 설명하면서요. 아이들이 다 커서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엄마는 우리를 외아들처럼 사랑했다’고요. 저는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따로 데이트도 하고 손도 잡아주며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그런 지혜를 불러들였던 것 같아요.
가수 팀은 어떤 아들이었나요?
살면서 아이들에게 어렵거나 힘든 티는 내지 않으려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우는 걸 팀에게 들켰는데 저를 꼭 안아주더니 한 마디도 묻지 않고 “엄마도 우리처럼 울 때가 있네”라고 하면서 크레딧 카드를 주고 마음껏 쓰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실 팀이 데뷔하고 바로 인기를 얻었지만, 한국말을 잘 못해서 불이익을 많이 당했었어요. 얼마 전에는 우울증도 왔었고 죽음도 생각했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통해 신앙과 내면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팀에게 가수를 제의하셨다고요?
미국에 온 지 10여 년 후,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던 날이었어요. 교회 성도들이 저를 데리고 노래방을 갔는데 당시만 해도 저는 노래방이 뭔지도 잘 몰랐던 때에요. 저와 함께 간 성도들은 모두 신앙심이 깊고 공부도 많이 한 엘리트들이었는데 다들 노래를 너무 잘했어요.그들의 음악을 듣고 화면의 가사를 보고 있자니 ‘ 아 저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바람을 피거나, 사업이 어렵거나, 자녀 문제로 고민을 하는 성도들을 위로해줬는데 그들의 삶이 노래 가사에 다 있더라고요. 저희 목사님도 ‘음성 하나가 죽고 싶은 한 사람을 구한다’라고 하셨는데요. 세상의 노래는 답이 없지만 찬송가에는 답이 있거든요. 세상 노래를 불러주고 답을 줄 수도 있는 크리스천 가수가 없을까 했는데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가 왔어요.
교회 성도분 아들이 연예계 매니저 일을 하면서 좋은 가수를 스카우트하러 다니고 있었는데, 미국에 부모님을 만나러 왔다가 우리 교회에서 셋째 대니와 넷째 팀이 특송하는 걸 보고 회사에 얘기를 했대요. 그 기획사 요청으로 조성모의 ‘To Heaven’을 셋째가 반주하고 팀이 노래를 부른 데모 테이프를 보냈어요. 녹음실에서 한 녹음도 아니고 한국말도 못 하니 발음도 안 됐던 그 노래가 특별하더래요. 기획사에서 비행기표를 제공하며 당장 한국으로 와 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팀에게 한국으로 가보라고 했더니 팀이 “Are you crazy?”라고 했어요(웃음) ‘네가 한국말 못하는 거 안다. 공짜 비행기표가 생겼는데 한국 가서 구경도 하고, 한국말도 배우면서 2주만 놀다와’라고 하면서 한국에 보냈죠. 당시 팀은 ‘이별이 뭐에요? 별이 두 개에요?’라고 할 정도로 한국말에 서툴렀거든요(웃음). 셋째가 팀과 같이 한국에 가서 한국말 가사를 영어로 설명해주고 이해할 수 있게 도와 오디션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한국에서 연예인을 꿈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부모님들의 고민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 그런 경우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으세요?
일단 아이들보다 부모님들이 원하시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어려서부터 다양하게 레슨을 시키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는데요. 내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허황된 것을 따라가지 않아야 하고 진정으로 아이의 은사가 어디 있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고요. 아이가 원하는 경우, 무조건 ‘안돼, 하지 마’라고 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선택의 여지를 좋아하거든요. 아이들의 답답한 마음을 숨 쉴 수 있게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다섯 아들을 잘 키워내고 목사로, 시인으로, 강사로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강의하시는 모습이 멋집니다. 이은성 목사님께서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상담학 박사도, 목사 안수도, 제가 계획했던 것이 아닙니다. 상담하고 사역하다 보니 자격증과 크레딧이 쌓이고 쌓여 학위가 됐습니다. 시인이 된 것도, 좋은 시를 쓴 시인에게 화답하며 쓴 글로 시작해 등단하게 되었고, 「여섯 남자와 산 이야기 – 하나님이 키우셨어요」도 책을 내자는 권유를 받고 2년을 도망 다니다 쓰게 됐어요. 모든 게 제가 하려고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이름 붙여 주신 거라 생각합니다. 많은 주부님이 환경이나 아이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무언가를 못 하고 주저앉아 있다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특별한 존재감을 키우고, 발전시키라고 말하고 싶어요. ‘Because of’가 아니라 ‘In spite of’가 되길 바랍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주저하지 마시길 당부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