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고
인터뷰, 글 김향일 에디터 사진 Young Bae
동양인 같지 않은 화려한 외모에 흑인 억양이 섞인 유창한 영어까지, 그녀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그녀를 마치 미국에서 나고 자란 가수나 배우쯤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영 배(Young Bae), 홀홀 단신으로 뉴욕에 온 지 이제 겨우 13년, 하지만 이제는 감히 뉴욕 타투 업계의 일인자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타투 아티스트인 그녀를 만났다 .
유명한 미술가 집안의 딸이었던 영 배 씨 어머니의 인생은 가난하고 무능력한 남편을 만나면서 송두리째 바닥으로 떨어졌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아주 어린 나이부터 영 배 씨는 언니와 함께 어머니가 운영하던 미술학원 바닥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모은 재산으로 번듯한 아파트를 장만했지만 그마저도 아버지가 선 보증으로 다 날리고 영 배 씨는 가족과 함께 남의 집 지하방과 교회 창고를 전전하며 어렵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런 구차한 삶 속에서도 그녀는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었고 남들 앞에서 결코 허름한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다.
동양인 같지 않은 화려한 외모에 흑인 억양이 섞인 유창한 영어까지, 그녀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그녀를 마치 미국에서 나고 자란 가수나 배우쯤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영 배(Young Bae), 홀홀 단신으로 뉴욕에 온 지 이제 겨우 13년, 하지만 이제는 감히 뉴욕 타투 업계의 일인자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타투 아티스트인 그녀를 만났다.
유명한 미술가 집안의 딸이었던 영 배 씨 어머니의 인생은 가난하고 무능력한 남편을 만나면서 송두리째 바닥으로 떨어졌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아주 어린 나이부터 영 배 씨는 언니와 함께 어머니가 운영하던 미술학원 바닥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모은 재산으로 번듯한 아파트를 장만했지만 그마저도 아버지가 선 보증으로 다 날리고 영 배 씨는 가족과 함께 남의 집 지하방과 교회 창고를 전전하며 어렵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런 구차한 삶 속에서도 그녀는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었고 남들 앞에서 결코 허름한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다.
“아무리 창고에 살았어도 전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고 싸구려 옷이라도 나름 코디를 해서 스타일리시하게 입고 다녔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제가 엄청 비싼 옷을 입고 다니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 형편과 아버지의 폭력은 그녀로 하여금 늘 한국에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2007년 추계예술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뉴욕으로 홀로 건너온다. 뉴욕에 도착해 방을 얻고 나니 그녀 손에는 겨우 80달러가 전부였다.
“손으로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자신 있었기 때문에 맨해튼 한인타운에 있는 네일숍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지만 전 눈썰미가 좋거든요. 일주일 만에 일을 배웠어요. 나중에는 저보다 훨씬 오래 일한 사람들을 가르치기까지 했어요. 식당에서도 일했고 밤이면 주얼리 홀세일 업체에서 재료를 받아 밤새 목걸이며 액세서리를 만들었어요. 만들다 그대로 잠든 적이 많았어요”
그렇게 2년 여가 지난 어느 날 그녀의 눈에 타투(Tattoo)라고 쓰인 작은 간판이 눈에 띄었다. 타투도 역시 그림 그리는 일이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조건 타투샵을 찾아갔다.
“그냥 들어가서 타투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먼저 공짜로 청소를 해 주겠다고 했죠. 내부 청소부터 타투 기구 세척과 소독을 해 주면서 타투하는 방법을 어깨너머로 봤는데 그렇게 어렵지 않겠더라고요. 이 정도면 저도 할 수 있겠다 싶었죠.”


7-8년 전만 해도 타투샵들이 몰려 있어 사람들로 북적이던 맨해튼 웨스트 4가와 이스트 빌리지에서 그녀는 스스로 타투하는 법을 익혀 타투이스트로 일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바로 실력 있는 타투 아티스트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타투는 그림만 잘 그린다고 잘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림의 바탕이 되는 피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피부에 그림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결국 실력 있는 타투이스트로 인정을 받을 수 있어요.”
타투를 예술로 인식하기 전인 그때만 해도 아무나 기술만 있으면 타투를 해 주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거의 유일한 여자 타투이스트다 보니 그곳에서 그녀는 같이 일하는 남자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걸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그녀는 남자들을 상대로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잘못한 건 남자들인데 해고 통보를 받는 건 영 배 씨였다. 그렇게 두세 곳의 매장을 옮기다 결국 그녀는 그곳을 떠나 타임스퀘어로 왔고 그곳에서 마침내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전 항상 타임스퀘어를 갔어요. 거기가 그냥 좋았어요. 반짝반짝 거리는 그곳이 저에게 뭔가 희망을 줬거든요.”
“그날도 그냥 타임스퀘어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안쪽 골목에서 작은 건물을 발견했어요. 이런 곳은 별로 비싸지도 않을 것 같아서 무작정 타투샵을 오픈할 만한 공간이 있는지 물어봤죠.”
“이발소, 전당포, 네일숍을 거쳐 안쪽 깊숙이 들어가니 화장실 크기만 한 아주 작은 창고가 하나 있더라고요”




그녀는 그곳에서 ‘Diamond Tattoos’라는 이름을 내 걸고 그녀의 첫 타투샵을 시작한다. 돈이 없던 그녀는 길에 버려진 의자 4개를 주워다 직접 가죽을 씌워 개조하고 벽에 페인트를 칠해 타투샵을 꾸몄다.
“홍보를 해야 했어요. 그런 곳에 타투샵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기다란 쇠기둥 끝에 판자를 붙이고 거기에 ‘다이아몬드 타투’라고 써서는 그걸 들고 무작정 타임스퀘어 광장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그런데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영 배 씨가 그렇게 홍보를 시작하자 그녀 가게 주변의 상인들도 그녀와 같은 간판을 만들어 너도 나도 타임스퀘어로 나와 홍보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타임스퀘어 서 있다 간판을 보고 관심을 보인 손님이 있으면 데리고 가게로 가서 타투를 해 주고 그리고 나면 다시 또 무거운 간판을 들고 타임스퀘어로 가서 홍보를 하고 그렇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 일을 반복했어요. 그러다 점점 실력 좋다는 소문이 나게 되고 몇 달 만에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거기서도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장사가 잘되니 세를 놓은 주인이 렌트비를 3배로 올리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했다.
“전 다른 타투이스트들과 달리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관광객들은 주로 아침에 오거든요. 그리고 손님이 있으면 새벽까지도 일을 했어요. 그럼 어떤 때는 하루 16시간씩 일을 할 때도 있었어요.”
어느 정도 타투이스트로도 인정을 받고 자리를 잡은 그녀는 5년 전부터는 다시 홀로 독립해 이제는 좀 더 여유 있게 손님들을 만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타투이스트로만 살아가던 그녀가 미국의 유명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그녀가 타투이스트로 한창 실력을 인정받으며 맨해튼에서 소문이 나던 때인 지난 2016년 흑인들과 히스패닉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하는 최고의 채널인 VH1의 유명 프로그램 ‘Black Ink Crew’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은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할렘에 있는 타투샵인 ‘Black Ink’의 직원들과 손님들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재밌게 구성해서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다. 2013년 시즌 1을 시작으로 현재 시즌 8까지 방영이 된 상태다.
그녀는 시즌 5부터 8까지 무려 4 시즌에 걸쳐 출연을 하게 되고 거기서 그녀의 일과 가족, 심지어 한국에 가서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는 모습까지 리얼로 보여주며 인기를 얻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아시안이 출연한 적이 없어요. 제가 유일하죠. 이 프로그램뿐 아니라 VH1 채널 자체에 아시안이 출연한 게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 출연 섭외가 오고 미팅을 했을 때 제 캐릭터나 성격이 크레이지 하다며 자신들의 프로그램 콘셉트에 맞다고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출연이 결정된 거예요”
“전 영화 같은 제 인생을 책으로 펴내고 싶어요. 그런데 아무리 책을 낸다고 해도 누군지도 모르는 제 얘기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TV에 출연해서 제가 유명해지면 사람들도 제 책에 관심을 가져 줄 것 같아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어요.”
현재 그녀는 책을 집필 중이다. 아마 내년쯤에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가 담긴 책을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30개월 된 아들 니코 블루와 살고 있다. 니코 블루는 꽃 이름인데 한국말로 하면 수국이다. 아들이 태어난 달에 피는 꽃이라 니코 블루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사랑을 주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 저는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처음에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못할까 봐 무서웠어요. 전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인데 아이를 낳으니까 그런 부분이 두렵더라고요.”
그녀의 앞으로의 꿈은 뭘까? 그녀의 대답은 심플했다. 잘 모르겠다였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 그녀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그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그녀는 항상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만날 때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두려움 없이 그 길을 갈 것이다.
“전 처음 뉴욕에 왔을 때 항상 걸어 다녔어요. 걸어 다니다 보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았거든요. 전 미국에 와서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항상 행복했어요. 왜냐하면 누구한테 맞을 일도 없고 내가 돈 열심히 벌면 내 방도 있고 그냥 잘 살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걸어 다니면서 ‘아 내가 이 뉴욕을 빨리 잡아먹어야겠다. 뭘 해서 잡아먹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얼마나 신나요! “

Young Bae
2007년 추계예술대학 졸업
2017년-2020년 ’Black Ink Crew’ VH1시즌5-8 출연
2009년-현재 Diamond Tattoos 운영
2019년 -현재 2one2 apparel 운영
인스타그램 @youngisblessed @2one2apparel @diamondtattoos